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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133호, 양력 : 12월 27일, 음력 : 11월 21일
[502년전 오늘 - 축산 소식117]가장 중요한 제사에는 흑우(黑牛)를 희생(犧牲)으로 사용하였다
2018. 12. 27 by 남인식 편집위원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각종 제향(祭享), 빈례(賓禮), 사여(賜與) 등에 필요한 가축의 사육을 관장하던 종6품의 관서를 전생서(典牲署)라 하였는데, 태조(太祖) 대의 소나 말 이외의 돼지, 양, 염소, 거위, 오리 등의 가축을 기르는 일을 맡아보던 예조(禮曺) 소속의 관청인 전구서(典廐署)를 세조(世祖)대에 개칭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국가 제사는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와 속제(俗祭)로 구분할 수 있는데, 단오나 추석, 설 등에 지내는 속제에는 희생을 사용하지 않는 반면 대사, 중사, 소사에는 반드시 희생을 올렸습니다.

이러한 희생에는 소, 양, 돼지를 사용하였으며, 제사의 크기에 따라 희생의 수를 달리하였고, 제사에 임박하여 정성스럽게 기른 가축을 죽여서 제물로 활용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전생서에서는 황우(黃牛) 3마리, 흑우(黑牛) 28마리, 양 60마리, 염소 14마리, 돼지 330마리 내외를 항상 사육하였는데, 특히 흑우(黑牛)는 1월에 행해지는 사직(社稷) 기곡대제(祈穀大祭) 때나 종묘 춘향(春享) 때와 같이 중요한 제사에는 반드시 사용하였으나 항상 조달이 쉽지 않아 애를 먹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록에 흑우(黑牛)에 대한 기록은 20여건이 나타나 있으나 제수(祭需)로 흑우를 사용한 상세한 기록은 세종대의 기사(記事)로 1년 동안 소용되었던 소(牛)의 두수가 종묘제(宗廟祭)에 검은 송아지 5두, 영녕전제(永寧殿祭) 때 검은 송아지 2두, 사직제 때 검은 큰 소 3두, 문선왕 석전제(文宣王釋奠祭) 때 큰 황소 2두, 문소전 별제(文昭殿別祭) 때 누런 송아지 2두를 매양 봄·가을에 올린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어 중종(中宗)대에는 제사에 쓰는 황우(黃牛)와 흑우(黑牛)를 외방(外方)으로 하여금 상납하게 하는데, 민간에 흑우는 희소하고 황우는 그래도 쉽게 구득할 수 있지만, 소 값으로 거두어 모으는 면포(綿布)가 7∼8동(同, 50필이 1동)이나 되어 폐단이 적지 않다고 적고 있습니다.

502년전 오늘의 기사에는 제사에 쓰는 황우와 흑우를 민간에서 조달하지 말고, 국가 목장(牧場)을 설치하고 직접 나누어 키우는 일을 의논하라고 전교(傳敎)하고 있습니다.

 

■중종실록 26권, 중종 11년 11월 21일 무술 기사 1516년 명 정덕(正德) 11년

제사에 쓰는 황우와 흑우를 키우는 문제를 삼공에게 의논하라고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제사에 쓰는 황우와 흑우는, 목장(牧場)을 설치하고 나누어 키우는 일을 삼공(三公)에게 의논하라."

【태백산사고본】 13책 26권 6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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