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제19-236호, 양력 : 6월 7일, 음력 : 5월 5일
[52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20] 임금에게 밤에 내는 야참(夜食)으로 우유죽(酪粥) 등을 올렸다
2019. 06. 07 by 남인식 편집위원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임금에게 올리는 밥을 수라(水刺)라 하였으며, 왕족에게 올리는 밥은 진지(進止)라 하고, 궁인이나 내외빈에게 내는 상은 반상(飯床)이라 하여 구별하였는데, 임금이나 왕비의 일상 식사는 5차례로, 이른 아침의 자리조반(初朝飯), 아침 식사로 조수라(朝水剌)와 저녁 때 석수라(夕水剌), 낮의 식사인 점심(點心), 밤에 내는 야참(夜食)이 있었고, 대개 이른 아침에는 보약을 드시며, 약을 안 드시는 날에는 미음이나 곡물을 갈아서 만든 응이, 죽(粥)등으로 차린 초조반을 드시고, 조수라는 10시가 지난 시간에 , 석수라는 오후 5시경에 드신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통상 수라상은 궁궐의 주방인 소주방(燒廚房)에서 주방상궁이 차리는데, 수라상을 차릴 때는 대원반, 곁반, 책상반 등 모두 3개의 상을 쓰며, 각 상에 올리는 내용물은 대원반의 경우는 은수저 1벌, 은입사시 1벌, 흰밥, 미역국, 간장류, 김치류, 찬품류, 토구 등이며, 곁반의 경우 기미용 은입사시 1벌, 금테를 한 상아저 1벌, 팥밥, 곰국, 찬품류, 빈 그릇 1개, 빈 접시 2개, 냉수대접(여름에는 사기대접, 겨울에는 은대접) 등이 준비되었고, 책상반에는 퇴선간에서 끓인 찌개와 같은 조치, 전골, 찜과 더운 음식을 받았다가 원반으로 올렸습니다.

수라상은 완전히 준비되면 임금이 식사하는 방으로 가져가며, 대원반은 남에서 북으로 향하여 놓고, 곁반은 수라상의 동편에 약간 떨어져 나란히 놓으며, 책상반은 원반과 곁반 사이의 앞쪽에 기미상궁을 마주보도록 놓은 후 임금을 모시고 들어 와, 임금이 좌정하면 은쟁반에 받쳐진 찬품단자를 들여와 임금에게 보이고 내어가며, 이어서 임금이 사용할 수저를 냉수대접에 한번 헹구어 행주에 닦아 바치면 곁반과 책상반 옆에 앉아 있는 기미상궁이 기미를 하고, 수라상궁의 시중을 받으며 임금이 음식을 들기 시작하는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한편, 밤에 내는 야참으로는 면(麵), 약식, 식혜 또는 우유죽(酪粥) 등을 올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실록에 우유죽인 낙죽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으나 그중 우유를 끓여 익힌 후에 효(酵)를 넣고 발효시킨 일종의 발효유인 타락(駝酪)을 넣어 끓인 타락죽 등을 포함한 중요 기사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단종(端宗) 대에는 대신(大臣)들이 조계청(朝啓廳)에 나와 문안하고, 사람이 장성한 나이로 있더라도 상(喪)을 입은 자가 애곡하는 거상(居喪)을 당하면 반드시 마음이 허하고 기운이 약하게 되는데, 지금 임금께서 나이 어리시고 혈기가 정하지 못하시니, 타락(酡酪)을 드시고, 여름 달이어서 천기가 찌고 무더우니 소주(燒酒)도 조금 드시도록 하자 그대로 따른 바가 있으며, 성종(成宗)대에는 행사에 쓰이는 물품을 줄이기 위한 목록을 써서 보내면서, 명일(名日)에 진상하는 낮에 드는 간식인 주물(晝物), 별주물(別晝物) 및 늘 공상(供上)하는 두탕(豆湯), 타락(駝駱)등은 모두 전량(全量) 제감(除減)하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중종(中宗)대에는 외방 수령(守令)들이 사명(使命)에게 음식을 접대할 때에, 모두 타락 죽(酪粥)을 사용하므로 소를 가진 백성들은 오랫동안 관청 문전에 서 있게 되고, 소가 여위어지면 향리(鄕吏)가 헐값으로 억지로 팔아 백성이 폐해를 입으니 관찰사에 유시(諭示)하여 금하게 하자는 건의가 있자. 외방은 관찰사가 의당 금하여야 할 것으로 이런 뜻으로 팔도 관찰사에게 글을 내리라고 하였으며, 제릉(齊陵)과 영릉(英陵)에 거둥할 때 타락(駝酪)이 폐단이 된다고 하여 그만두게 하도록 전교(傳敎)하기도 하였고, 명종(明宗)대에는 전 영의정의 죄악을 열 가지 조목으로 올리면서, 사복시의 타락죽은 상공(上供)하는 것인데 임금께 올릴 때와 똑같이 낙부(酪夫)가 기구(器具)를 가지고 영의정의 집에 와서 조리하게 하여 자녀와 첩까지도 배불리 먹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528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임금이 지난번에 가뭄으로 인하여 인수 왕대비전(仁粹王大妃殿)과 인혜 왕대비전(仁惠王大妃殿)인 양전(兩殿)에서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을 하였는데, 비가 이미 흡족히 내린 까닭으로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그전대로 회복하기를 청하자, 양전(兩殿)에서 임금이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그전대로 회복한 후에 마땅히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그전대로 회복할 것이라고 교지(敎旨)하고 있습니다.

 

■성종실록 253권, 성종 22년 5월 5일 경진 기사 1491년 명 홍치(弘治) 4년

대비전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예전대로 회복시키도록 전교하다

전교(傳敎)하기를,

"지난번에 가뭄으로 인하여 양전(兩殿)에서 감선(減膳)하였는데, 지금 비가 이미 흡족히 내린 까닭으로 내가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그전대로 회복하기를 청한다."

하니, 양전(兩殿)에서 교지(敎旨)를 내리기를,

"주상(主上)이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그전대로 회복한 후에 마땅히 수라상의 음식 가짓수를 그전대로 회복할 것이니, 그전대로 음식을 올리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9책 253권 6장

【주】

양전(兩殿) : 인수 왕대비전(仁粹王大妃殿)과 인혜 왕대비전(仁惠王大妃殿).

감선(減膳) : 수라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이던 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