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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87호, 양력 : 10월 23일, 음력 : 9월 15일
[529년 전 오늘 - 축산 소식71] 조선시대 짐승 가죽은 중요한 외교 거래 품목이었다.
2018. 10. 23 by 남인식 편집위원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대외 외교의 기본 형식은 중국에 대해 조공(朝貢)을 하고 책봉(冊封)을 받아 정통성을 부여 받고 왕권을 강화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조공의 원래 의미는 중국에서 한대(漢代) 이래 황제의 주변국 지배자 책봉에 대해 당해국(當該國)이 감사와 복종의 표시로 입조(入朝)하여 토산물을 공물(貢物)로 바치던 외교적인 의례로 조(朝)는 문안 인사를 뜻하는 입조 또는 배알(拜謁)의 예(禮)를 의미하며, 공(貢)은 예물로 바치는 각 지방의 토산물인 방물(方物)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사신들이 중국에 가지고 가는 조공에는 표(表)·전(箋)이라는 외교문서와 함께 방물이 수반되었는데 은기명(金銀器皿), 나전소함(螺鈿梳函), 백면주(白綿紬), 각색 저포(苧布), 용문염석(龍紋簾席), 각색 세화석(細花席)과 같은 그릇, 나전칠기, 명주, 화문석류와 황모필(黃毛筆), 백면지(白綿紙)와 같은 지필류, 인삼, 종마, 매와 같은 토산품 외에 반드시 담비의 가죽인 초피(貂皮)와 수달피와 같은 짐승의 가죽이 포함되었습니다.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의 짐승 가죽은 주요한 대외 교역 품으로 발해(渤海)는 초피, 호랑이 가죽인 대충피(大蟲皮) 등을 일본에 보내 그 값의 몇 십 배나 되는 면(綿),포(布) 등을 돌려받은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이리, 오소리, 고양이, 고라니, 담비, 수달피, 호랑이, 표범, 곰 ,염소 가죽 등을 수출하고, 표범, 소, 담비, 수달피, 호랑이, 쥐 가죽 등을 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조선시대 일본과의 외교에서도 국서(國書)와 서계(書契)라는 두 종류의 문서가 교환되었는데, 국서는 조선 임금과 일본 막부장군, 서계는 외교 실무 부서인 조선의 예조, 동래부사, 부산첨사와 일본의 대마도주, 이정암(以町庵), 만송원(萬松院) 등의 사이에 교환된 문서입니다.

이러한 외교문서에 딸린 예물의 종류와 수량을 적은 물품 목록이 별폭(別幅)으로 일본에서는 호초(胡椒), 명반(明礬), 단목(丹木), 대화(大和) 진주, 문지(紋紙) 같은 방물을 보내왔고, 조선에서는 백면주(白綿紬), 백목면(白木綿), 백저포(白紵布), 흑마포(黑麻布) 및 황모필(黃毛筆), 화문석, 진묵(眞墨), 인삼, 매 외에 호피와 표피(豹皮) 등 가죽류를 보내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529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일본 국왕의 사신이 조선 임금에게 수달피(獺子皮)를 바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종실록 232권, 성종 20년 9월 15일 경오 기사 1489년 명 홍치(弘治) 2년

일본 국왕의 사신 편강 등이 수달피를 바치니 면포를 하사하다

일본 국왕(日本國王)의 사신(使臣) 편강(片剛) 등이 수달피(獺子皮) 25장(張)을 바치니, 면포(綿布) 2백 88필을 하사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6책 232권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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