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98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59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39] 조선시대 젖소는 송아지 분만 후 유즙(乳汁)을 생산하는 농우(農牛)였다 [316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38] 임금의 갈증(渴症)을 없애기 위해 양(羊)을 5일에 한 마리씩 바치기도 하였다 [39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37] 큰 길(大路) 폭은 우마(牛馬)가 끄는 수레 일곱 바퀴를 기준으로 하였다 [59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36] 강화도(江華道)에 1만 마리의 말(馬)을 먹일 목장을 건립하려고 하였다 [417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35] 국립대학인 성균관(成均館)에서 하루에 수백 마리씩 소(牛)를 도살하였다 [381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34]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소(牛)가 부족하자 몽고(蒙古)까지 찾아가 도입하였다 [60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33] 거위나 오리 한 마리 값이 소나 말 한 마리 값에 달하기도 하였다 [356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32] 재위기간 15년간 가축 전염병으로 소와 말(牛馬) 6만 여두가 죽은 현종(顯宗) [426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31] 임진왜란 시 노략질로 남아 있는 소가 없었고, 죽은 것도 많아 농우가 없었다 [617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30] 함경도에서는 제사하고 손님대접을 위해 1년에 수천마리 소(牛)를 잡았다 [52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29] 중국 관원에게 물개의 배꼽(膃肭臍)을 잘 가려 보내 주도록 하였다 [52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28] 종로 비원(秘苑)에 임금이 짐승을 놓아두고 말을 달리면서 사냥하였다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91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