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87] 군사용(軍事用)으로 낙타 한 마리를 2억원에 사려고 하였다.
[53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87] 군사용(軍事用)으로 낙타 한 마리를 2억원에 사려고 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11.1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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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103호, 양력 : 11월 14일, 음력 : 10월 7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왕조실록에 낙타(橐駝)에 대한 기록은 모두 30여 차례로 모두 몽고등 북방 민족과의 거래에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고려시대 태조 왕건이 거란족 사신이 화해를 맺기 위해 낙타 50여필을 가지고 오자 발해(渤海)를 멸망시킨 반감으로 낙타를 모두 굶어 죽게 한 사건(萬夫橋 事件)이 유명하며, 고려 의종(毅宗)대에 정한 가축 사양표준인 축마료식(畜馬料式)에는 1년을 청초절(靑草節)인 5월- 9월과 황초절(黃草節)인 10월-4월로 낙타 1두당 피(稗) 2두(斗) - 5두, 콩 9승 - 2두(升), 소금 3합(合) - 5합을 급여하도록 하고 있어 일정 수의 낙타가 사육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낙타 사육을 본격 검토한 임금은 성종으로 ‘낙타는 무거운 짐을 싣고 멀리 갈 수 있으니, 군사를 일으킬 때에 양식을 나를 만하여 베 60필을 보내어 사오도록 하라’ 고 전교한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532년전 오늘의 실록에서는 사헌부 대사헌(司憲府 大司憲)등이 차자(箚子)를 올려 개와 말 등은 본디 그 땅에서 나는 토성(土性)이 아니거든 기르지 말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나라에서 기르지 말도록 되어 있다고 건의하고, 낙타의 값도 흑마포(黑麻布)로 60필인데 정포(正布)로 계산하면 6백필이며, 콩으로 치면 6천 두(斗)이고 석(碩)으로 하면 4백으로 쓸데없는 짐승을 사는데 경비가 과하다는 건의를 받고 임금이 뜻을 철회하고 있습니다.

당시 콩 6천두의 가격을 지금의 값으로 환산하면 대략 2억1천만원(콩 1두 7kg 환산, kg당 5천원 환산)에 해당하는 가격입니다.

한편, 조선 후기 청나라와의 교역을 위해 함경도 회령에 매년 개설을 허가한 시장인 회령개시(會寧開市)에서는 교역 참가 인원을 350명으로 하고 거래되는 가축을 말, 소외에 낙타를 포함하여 640두로 결정한 기록도 있습니다.

 

■성종실록 196권, 성종 17년 10월 7일 무인 기사 1486년 명 성화(成化) 22년

대사헌 이경동 등이 차자를 올려 중국에서 낙타를 사들이지 말라고 청하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이경동(李瓊仝) 등이 차자(箚子)를 올려 아뢰기를,

"신(臣)들이 듣건대, 이제 흑마포(黑麻布) 60필(匹)을 보내어 중국에서 낙타(橐駝)를 산다 합니다. 이것이 작은 일 같기는 하나 실은 대체(大體)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그 옳지 않은 것 세 가지를 삼가 조목별로 나누어 아룁니다. 삼가 상고하건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겨 사이 팔만(四夷八蠻)에 길을 트자 서려(西旅)에서 개[獒]를 바쳤는데, 태보(太保) 소공석(召公奭)이 글을 지어 경계하는 말을 아뢰기를, ‘무익한 일을 하여 유익한 것을 해치지 않으면 공(功)이 이루어지며, 기이한 물건을 귀하여 여기고 소용되는 물건을 천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이 넉넉합니다.

개와 말이 토성(土性)이 아니거든 기르지 말고, 진기한 새와 짐승을 나라에서 기르지 말도록 하소서. 조그마한 행위를 삼가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德)에 누를 끼쳐, 아홉 길[仞]의 산을 만드는 데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기 때문에 공이 이지러집니다.’ 하였습니다. 낙타는 먼 지방의 기이한 동물인데, 비싼 값으로 중국에서 구하여 사는 것은, 기이한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라 하겠으며, 토성(土性)이 아니면 기르지 않는 것이라 하겠습니까? 장차 중국의 식견 있는 자가 듣는다면, 전하께서 조그마한 행위를 삼가지 않아 성덕(盛德)의 누가 된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 옳지 않은 것의 첫 번째입니다.

고려 태조(高麗太祖)는 삼한(三韓)을 통합하여 어진 임금으로 일컬어집니다. 거란(契丹)에서 낙타를 보내어 오니, 태조가 다리 밑에 매어 두라고 명하여 굶어 죽었는데, 이제현(李齊賢)이 이것을 논하여 이르기를, ‘태조께서 이렇게 한 까닭은 융인(戎人)의 간사한 계책을 꺾고 또한 후세의 사치하는 마음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성성(聖性)이 고명(高明)하여 백왕(百王)에서 뛰어나신데, 낙타의 한 가지 일에 도리어 고려 태조의 근엄(謹嚴)한 것만도 못하시겠습니까? 그 옳지 않은 것의 두 번째입니다.

우리 나라는 해마다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서 공사(公私)가 다 궁핍하여 조세(租稅)로 거두어 들이는 것이 매우 적습니다. 흑마포(黑麻布) 1필의 값은 정포(正布) 10필인데, 흑마포는 저자에서 나오므로 장사하는 집에서는 실로 쉽게 장만되나, 정포는 농부의 전세(田稅)에서 나오므로 1필을 콩 10두(斗)로 칩니다. 이제 낙타의 값은 흑마포 60필인데 정포로 계산하면 6백 필이며, 콩으로 치면 6천 두이고 석(碩)으로 하면 4백입니다. 이 쓸데없는 짐승을 사려고 전세(田稅) 4백 석의 콩을 쓰니, 그 경비에 있어서 어떠하겠습니까? 그 옳지 않은 것의 세 번째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검소한 덕(德)을 숭상하고 낭비를 절약하며 먼 지방의 물건을 보배롭게 여기지 마시어 끝까지 처음처럼 삼가소서. 그러면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이제 올린 차자(箚子)를 보니 매우 기쁘다. 내 당초의 마음은 이 짐승을 귀하게 여긴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출정(出征)할 때에 쓴다고 하므로, 내가 사서 한 번 시험하려고 하였을 따름이니, 물건을 애완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바른 의논을 들었으니, 즐거이 따른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0책 196권 3장

【주】 토성(土性) : 본래 그 땅에서 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