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년 전 오늘 - 축산 소식90] 일반 백성이 호랑이 5마리를 잡으면 벼슬 품계(品階)을 주었다
[487년 전 오늘 - 축산 소식90] 일반 백성이 호랑이 5마리를 잡으면 벼슬 품계(品階)을 주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11.1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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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106호, 양력 : 11월 19일, 음력 : 10월 12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호랑이를 잡기 위해 중앙과 지방에 조직된 특수 부대를 착호군(捉虎軍)이라 하였고 서울의 착호군은 중앙군으로 번(番)의 차례가 되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군역에 복무하던 번상군(番上軍) 갑사(甲士) 가운데서 별도로 착호갑사(捉虎甲士)를 선발하여 운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착호갑사가 제도화 된 것은 세종(世宗)대로 당번(當番), 하번(下番) 각 20명씩으로 처음 운용되었으며, 그 후 갑사의 정원이 증가함에 따라 착호갑사도 늘어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갑사 1,800명 중 착호갑사가 440명으로 늘어났고, 5교대로 88명이 6개월씩 복무하면서 녹봉(祿俸)인 체아록(遞兒祿)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착호갑사의 선발 요건도 까다로워 ① 화살촉을 나무로 만든 무예 시험용 화살인 목전(木箭)을 180보(步)에서 1개 이상 맞히기 ② 말 타고 활쏘기(騎射) 2번 이상, ③말 타고 창던지기(騎槍) 1번 이상, ④ 일정 시간 멀리 달리는 능력(走) 시험에서 250보 이상 가기와 양손에 각각 50근씩 들고 100보 이상 가기 중에 하나에 합격한 자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앙에 착호갑사가 있던 것과 달리 지방의 착호인(捉虎人)은 각 도의 절도사가 해당 지역의 군사(軍士) 및 향리와 역리, 공천(公賤)과 사천(私賤) 중에서 자원자를 받아 뽑고 자원이 없는 경우에는 장용(壯勇)한 자를 택하여 정하였는데, 지방 수령은 호랑이가 출현하면 호환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중앙의 명령을 받지 않고 지방의 착호군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면 별도 정해진 포상 기준으로 포상하였는데, 덫이나 화살, 창을 사용하여 자발적으로 잡은 자는 먼저 명중시킨 자의 예에 따라 원하는 대로 근무 일수를 주거나 포(布)를 지급하였고, 잡은 호랑이와 표범도 함께 준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향리(鄕吏)로서 자진하여 1년에 다섯 마리를 잡은 자는 신역(身役)을 면제하여 주었습니다.

또한 화살과 창으로 호랑이의 머리에 명중시켜 잡은 것이 다섯 마리 이상인 자는 품계를 올려 주되 일반 백성도 마찬가지로 품계를 주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487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한양 삼청동근처에 호랑이의 발자국이 있다고 하니 착호 대장(捉虎大將)등을 동원하여 몰아내라는 전교가 있었습니다.

 

■중종실록 71권, 중종 26년 10월 12일 임진 기사 1531년 명 가정(嘉靖) 10년

소격 서동 근처에 호랑이의 흔적이 있으니 이를 몰아내도록 하다

병조가 아뢰기를,

"소격 서동(昭格署洞) 근처에 호랑이의 발자국이 있다고 하니 종적을 찾아 몰아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였다.

"호랑이가 있는 지 없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있다고 한다면 산밑에 사는 사람들이 상해를 당하는 폐단이 없지 않을 것이다. 밤에 통행을 금지시킬 것으로 해당 부(部)에 이르라. 또 착호 대장(捉虎大將)과 좌우 위장(左右衛將)을 미리 차정하였다가 내일 몰아내게 하라."

사신은 논한다. 야수(野獸)가 도성 안으로 들어왔으니 매우 상서롭지 못하다. 얼마 안 되어 안로(安老)의 무리가 국가를 거의 위태롭게 했으니 하늘이 미리 경계를 보여줌이 영검하다 하겠다.

【태백산사고본】 36책 71권 25장

【주】 소격 서동(昭格署洞) : 지금의 서울 삼청동(三淸洞) 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