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칼럼] '제육볶음 위해 직접 돼지를 죽일 수 있습니까'라는 기사에 붙이는 주석
[편집자 칼럼] '제육볶음 위해 직접 돼지를 죽일 수 있습니까'라는 기사에 붙이는 주석
  • 김재민
  • 승인 2023.12.08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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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혐오' 트랙터 발명 이후 식량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 많아지면서 생겨난 현상
한겨레신문 누리집 갈무리
한겨레신문 누리집 갈무리

 

한겨레신문에 자극적인 제목의 신간 소개 기사가 올라와 주의 깊게 읽게 되었다.

동물권 운동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김도희 변호사의 '정상동물'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기사였다. 

책 제목보다 기사의 제목이 더 자극적인데 "제육볶음 위해 직접 돼지를 죽일 수 있습니까"라는 타이틀은 고기를 먹는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 기사를 작성한 최재봉 기자는 책 소개에 앞서 '매혹과 당위 사이에서'라는 칼럼을 통해 "육식의 매혹과 채식의 당위 사이에서 수시로 흔들리며 책을 읽고 기사를 써야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최재봉 기자는 기사 작성을 하는 동안 또 기사를 쓰기 위해 책을 읽는 내내 죄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채식주의자들의 전략 중 하나가 죄의식 불러일으키기인데, 정상동물이라는 책은 이러한 공식에 정확히 들어맞는 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불쌍한 동물을 도축한다고...삼겹살 먹겠다고, 제육볶음 먹겠다고 돼지를 잡어...

저의 어린시절 경험을 소개하면, 제가 살던 시골마을 밤뒤에는 작은 우리에 돼지 서너마리를 키우는 집이 있었습니다.

보통 축력 활용을 위해 소를 키우는데 돼지를 키우는 경우는 잔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집에 환갑잔치, 돌잔치, 결혼 같은 이슈가 예정되어 있으면 손님 접대를 위해 고기를 내 놓아야 하는데 돼지를 미리 키워서 대응하는 것이죠.

제가 꼬맹이 시절 꼬맹이 친구들과 돼지 구경을 자구 가곤했습니다(꼬맹이들의 예정된 코스 중 하나).

우리는 돼지고기를 언제 먹을 수 있을까? 서로 묻기도 하고, 당장 저 돼지를 잡아서 먹고 싶다고 이야기도 합니다. 어떤 친구는 볼기살만 잘라다가 구워먹으면 안되냐 이런 이야기도 하고요. 마을 잔치에 대한 내용도 공유를 합니다. 

6~7살 꼬맹이들이 돼지를 앞에 두고 돼지 먹을 날을 상상하며 미식회를 하는 것이죠.

이런 상상속의 돼지 미식회는 저희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초딩 꼬맹이들도 마찬가지고, 중딩 형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디어 마을 잔치날이 코앞에 다가와 잔치 전날 돼지를 잡습니다. 꼬맹이들도 고기를 얻어먹을까 돼지 잡는 장소 주변을 왔다갔다 하며 자리를 잡습니다.(때려도 안죽어, 드디어 죽었다! 만세!!)

이때부터 잔치는 시작이 됩니다. 어른들은 생 내장을 썰어서 먹고, 즉석에서 불을 피워 구워도 먹고, 삶아도 먹습니다.

오줌보로 초딩, 중딩 형들은 축구도 하고 그러고 시간을 보냅니다. 축제입니다. "돼지잡는날 축제"

이러한 모습은 우리 마을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한겨레가 소개한 '정상동물'에서 제육볶음을 위해 돼지를 도축할수 있겠냐고 도발하고 있지만, 돼지를 구경하며 상상의 미식회를 했던 꼬맹이들의 모습에서는 상상이지만 한두번 돼지를 잡은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대신해 힘을 쓰는 가축이 등장하고, 다시 가축을 대신해 힘을 쓰는 트랙터가 등장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않아도 식량을 조달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농사를 짓는 인구가 전체에 1%가 되지 않습니다. 고상하게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여행을 다니고, 게임을 제작하고, 음악을 만드는 등 수많은 산업이 농기계의 발명 이후 생겨납니다.

가축이 사람 10~20명 몫의 일을 했다면, 경운기는 100여명, 100마력 이상의 대형 트랙터는 2000~3000명 몫의 일을 해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량조달을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농업과 사람, 도시와 농촌의 거리를 멀게 했습니다.

식량조달을 위해 악착같이 일해야 했던 농촌은 그냥 평온한 곳으로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대신해 가축을 키워 축산물을 생산하는 이들을 불편해 하기 시작했고, 불편을 넘어 혐오하고 악막화 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트랙터가 없었다면, 전체 인구의 40~50%는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죽어라 일을 했어야 했을 것이고, 소나 말의 축력도 이용하지 못했다면 전체 인구의 70~80%는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일해야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40여년전 저희 마을 꼬맹이들처럼 상상의 돼지미식회를 수시로 열었을 것이구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량 생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점차 인간을 무척 고상한 생명체로 생각하고 가축을 사육하고 도축을 하는 행위를 포악하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1~2백년 전만 해도 인간은 호랑이 같은 맹수에게 사냥을 당하기도 했고, 식량을 얻기 위해 멧돼지와 꿩, 토끼 등을 잡아 먹은 잡식동물에 불과하지 않았음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 시절과 지금의 차이는 식량조달을 위해 몸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인구가 절대적으로 많아졌다는 것 그 차이뿐입니다.

그리고 이 책(정상동물)에서도 축산업이 기후 위기를 일으키는 주범이라고 낙인 찍고 있는데, 국내 농업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3%에 불과하고 축산업은 1.4%에 그치고 있습니다. 범위를 세계로 넓혀도 축산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5.6% 내외입니다. 기후 위기는 땅속에 매장 되어 있던 탄소인 화석연료를 무분별하게 개발해 사용했기 때문임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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