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99] 임금이 타는 말(御馬)의 재갈이 벗겨지면 담당 관리는 파면이었다
[593년 전 오늘 - 축산 소식99] 임금이 타는 말(御馬)의 재갈이 벗겨지면 담당 관리는 파면이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11.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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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115호, 양력 : 11월 30일, 음력 : 10월 23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임금이나 왕실에서 사용한 수레와 말을 다루는 여마(輿馬) 업무와 국가의 말을 사육하는 마구간과 목장 관리를 총괄하는 병조(兵曹) 직속의 사복시(司僕寺)에 소속되어 직접 임금이나 문무관 등이 탄 말(馬)이나 당나귀를 끈 마부(馬夫)를 견마배(牽馬陪)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말구종(馬驅從) 또는 배종(陪從)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주로 임금, 세자(世子), 군(君) 등의 경마를 잡았는데, 경마란 남이 탄 말의 고삐를 잡고 말을 모는 일로 견마(牽馬)는 이 경마의 음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복시의 관원은 여마와 구목에 관한 일뿐 아니라, 임금이 궁궐 밖으로 거둥할 때 좌우에서 시위하던 보패(步牌) 밖에서 임금을 수행하며 호위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소속 관원은 경관직(京官職)으로 정2품 제조(提調) 2명, 정3품 당하(堂下) 정(正) 1명, 종3품 부정(副正) 1명, 종4품 첨정(僉正) 1명, 종5품 판관(判官) 1명, 종6품 주부 2명을 두었고, 이들 중 판관 이상의 관원 2명은 한 관직에 오래 머무는 구임관(久任官) 이었습니다.

또한 하급 이속(吏屬)으로는 서리(書吏) 15명, 제원(諸員) 600명, 차비노(差備奴) 14명, 근수노(塊隨奴) 8명, 이마(理馬) 4명, 견마배(牽馬陪) 11명, 고직(庫直) 4명, 대청직(大廳直) 1명, 사령(使令) 11명, 군사(軍士) 2명이 배정되었고, 이 중에 견마배는 체아직(遞兒職)이나 대장직(隊長職)을 받기도 하였으나, 후에는 잡직(雜職) 종7품을 받았습니다.

견마배는 사신(使臣)의 수행원으로서 일하기도 하고, 임금의 사냥 훈련인 강무(講武)를 행할 때나 지방으로 거둥할 때 마필을 끌면서 어가(御駕)를 호위하였는데, 견마는 원칙적으로 임금과 문무관에게만 허용되었으나, 나중에는 민간에서도 성행하여 조선시대 말기에는 양반이 출입할 때는 반드시 과하마(果下馬)라도 타고 견마를 잡혀야 체면치레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견마배의 근무 강도는 임금이 말을 타고 갈 때 어마의 재갈이 벗겨져 말이 멈추면 죄를 묻는추고(推考)를 당할 정도로 강했는데, 실제로 593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어마(御馬)에 재갈을 먹이지 않아 담당 관리인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를 파면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세종실록 30권, 세종 7년 10월 23일 무자 기사 1425년 명 홍희(洪熙) 1년

어마를 재갈먹이지 않은 판사복시사 이열, 행 사직 황전 등의 직을 파면하다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열(李烈)·행 사직(行司直) 황전(黃琠) 등의 직을 파면하니, 어마(御馬)를 재갈 먹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태백산사고본】 10책 30권 7장

【주】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 임금이 타는 마필, 궁중의 가마 등을 관장한 관청의 벼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