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우유, 계란 비슷하면서도 다른 자급률 100%의 비극
쌀, 우유, 계란 비슷하면서도 다른 자급률 100%의 비극
  • 김재민 기자
  • 승인 2018.01.23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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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계란·우유 자급자족 되는데, 수급 불안 왜?” 인터넷매체인 노컷뉴스의 3월 20일자 뉴스의 제목이다. 요지는 자급률이 높은 품목은 농민들이 공급과잉을 자초하고 있어 스스로 피해를 보고 정부와 국민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게 요지다.

수입 대체가 가능한 품목, 자급률이 낮은 품목의 경우 단기적 수급불균형 상황이 도래했을 때 보통은 수입농축산물의 수출입물량이 조절되면서 가격을 안정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송아지 생산에 1년, 그리고 비육 후 출하하는데 30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한우의 경우 한번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정상화 되는데 3~4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쇠고기가 부족하다 해서 곧바로 생산량을 늘릴 수가 없고, 남는다고 해서 이미 3년 치의 물량이 출하대기하고 있어 추가로 송아지 생산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3년 후에나 수급을 맞출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럴 때 가격이 오르면 수입업자들은 추가 이윤을 노려 수입량을 늘리고, 반대로 가격이 하락하면 수입량을 줄여 대응하게 된다. 이미 생산된 부분육을 들여오는 것이기에 가격을 보고 물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입대체가 불가능한 품목은 온전히 국내에서 수급을 맞춰야 한다. 남는 것은 그나마 낫다. 모자라면 수입대체가 불가능하므로 더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수입대체가 불가능한 품목은 공급과잉을 용인하게 되는 것이다.

자급률이 높은 품목 그리고 그 품목이 물과 공기처럼 흔하게 여겨지고 천덕꾸러기가 된 이유는 이렇듯 정치적, 경제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자급률 100% 품목은 왜 수급이 불안한지 자급률이 높은 쌀, 우유, 계란을 살펴보며 그 이유를 따져 본다.

쌀의 공급과잉은 정부가 조장했다

쌀의 자급률이 높은 이유는 우리가 주로 먹는 자포니카 품종의 쌀 생산량이 국제적으로 많지 않고 무역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쌀을 주식이라 이야기하지만 풍족하게 공급된 역사는 1980년대 중반부터다.

그 이전까지는 쌀은 부족했고 그래서 밥에 쌀 대신 콩이나 보리같은 잡곡을 섞어 먹었고 그나마 다른 잡곡도 모자라 포만감만 높여 주는 채소나 나물 같은 것을 넣어 밥을 지어 먹기도 했다.

먹을 것이 흔치 않았던 시절 쌀의 부족은 정권의 존립기반까지 영향을 주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가 개발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정부는 쌀을 더 생산하기 위해 각종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쌀을 더 생산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생산수단이 되는 논이다. 정부는 농지를 확보하려는 방편으로 간척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마지막 간척사업지인 전북의 새만금, 그보다 조금 앞서 조성된 경기도 화성의 화옹지구 모두 안정적 농지 즉 논을 확보하기 위해 기획되고 추진된 사업이다.

간척사업은 보통 20~30년 동안 기획되어 조성된 이후 이용되기 때문에 처음 간척사업이 기획됐을 당시에는 논으로 활용하려 했을 터이나 지금 두 단지 모두 논 이외의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렇게 농지를 조성하고, 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사업은 농림부 산하 한국농어촌공사가 담당하고 있는데 논 인프라 종합 관리 공기업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정부가 쌀을 대량으로 사들이던 시절 쌀 품질의 평가가 필요했는데 그 업무를 맡았던 곳이 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 사무소가 전국에 설치되다 보니 현재는 각종 인증사업, 직불금, 농가경영체등록 등으로 사업영역이 넓어졌다.

농촌진흥청 식량과학원은 쌀의 품종개량 업무를 맡았고, 국립종자원은 벼 종자를 농민에게 보급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지역농협은 정부의 쌀 수매를 대행했다. 논농사의 기계화를 위해 농촌진흥청 산하에 농기계연구소가 별도 운영되기도 했었고, 화학비료와 농약 등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수많은 기관이 정부 주도 또는 정부 지원을 받아 설치되어 쌀생산을 지원했고, 그렇게 생산된 쌀 상당수를 정부가 구매를 해줬다. 또 국민에게 저가에 공급하며 수급을 조절해 왔다. 식량 증산 정책은 2000년을 전후해 폐기됐지만, 그 당시 정부가 늘려 놓은 공급기반이 아직 정리가 안 됐을 뿐으로 노컷뉴스가 말한 농민이 아니라 현재의 공급 부족은 정부가 자초한 것이 될 수 있다.

우유, 가격 통한 수급조절 불가…일시적 수급 불균형 용인해야

우유의 공급과잉은 누가 자초한 것일까? 먼저 낙농업의 특수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유를 생산하는 낙농목장의 노동 강도는 축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 중 단연 최고다.

하루 2~3회 하는 착유는 1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진행된다. 2회 착유를 가정했을 때 4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강한 노동 강도로 인해 농민들이 산업에서 쉽게 이탈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소득을 보장해 주어야만 산업이 유지될 수 있다.

그래서 우유는 산업 도입기부터 고정된 가격으로 거래가 이뤄졌고, 생산비 증감 요인이 있으면 유업체와 협상을 통해 가격을 조정해 소득을 보장받아 왔다.

가격이 고정되었다는 것은 가격에 의한 수급조절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수급조절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백색 시유는 대규모 수입이 불가능하고, 고품질의 발효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분유보다는 원유를 사용해야 한다. 결국, 유업체도 안정적인 고품질 원유 확보 차원에서 농민들의 소득을 보장해 주는 쪽으로 행동을 해왔다.

이로 인해 보통 유업체들은 원유 구매의 낮은 탄력성을 보완하기 위해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여 왔다. 치즈, 버터, 분유, 발효유, 가공유 등 다양한 제품으로 가공해 저장성도 높이고 부가가치도 높여 수급 불안에서 오는 리스크를 회피하고 있다.

또 유업체들도 원유 도입을 탄력적으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여 소비자가 선호할만한 제품을 개발하고 더 많이 판매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면서 유업체의 자체 경쟁력 또한 높아져 후발 유업체의 진입을 막으면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까지 만들어졌다.

농가의 수급조절 비협조가 단편적으로는 불합리해 보이지만 그러한 환경에 적응한 결과는 소나 돼지, 닭을 가공하는 육가공업계보다 유가공업체의 가치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 수급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한 개 더 덧붙인다면 국내 유가공산업은 치즈라는 상품을 외국 시장에 넘겨주면서 수급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유가 가장 많이 남았을 때가 2013~2015년 사이인데 국내로 수입되는 치즈의 20~30%만 국내산 우유로 제조한다면 우유 감산이 아닌 증산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치즈는 UR 협상에서 일반과세 부과품목으로 분류하면서 국내 치즈 산업이 성장할 기회를 날려 버렸다. 당시 국내에서 치즈가 거의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협상을 한 것인데 이에 비교해 일본과 미국, 유럽의 많은 국가는 치즈 상품군을 수백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에 고율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치즈가 자국 시장에 유입되는 것을 막아 놨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자연 치즈, 가공치즈 정도로 서너가지 관세품목으로 나눠 놓았고 관세율도 36%의 관세만 내면 누구나 수입이가능한 상황이다.

“우습게 봤던 계란에 크게 당했다”

계란은 우유와 비슷하게 매일 생산이 되고, 매일 출하를 해야 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유보다 조금 더 불리한 것이 있는데, 우유는 다양한 가공품으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 계란은 대부분 생란 형태로 최종소비단계까지 가기 때문에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가 없다.

부가가치가 낮고 상품은 매일 쏟아져 나오고, 유통기한이 짧아 유업체와 같이 재고 부담을 짊어지려는 유통주체도 없다. 계란 생산농가도 이 같은 행태는 동일해 매일 같이 계란을 출하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계란이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농가조차도 재고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우선 계란을 출하하고 보자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농가들은 계란의 생산비를 낮추는데 골몰하게 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규모의 경제로 접근하다 보니 농장의 규모는 커져 다시 공급량이 많아져 가격을 낮추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계란 유통의 핵심은 속도가 되었다. 누가 농장에서 소매시장까지 빨리 가져다주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빨리 가져다주지 않아도 되는데, 모든 플레이어가 상품을 오래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리스크이기 때문에 폭탄 돌리듯 다음 유통단계에 떠넘기다 보니 계란의 유통속도, 효율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계란 유통업의 규모가 다른 품목보다 작아지게 했다. 수많은 플레이어가 계란을 필요한 곳에 빠르게 분산시키다 보니 언제 어떻게 계란이 수집되어 유통되고 있는지조차 파악할 길이 별로 없다.

또 계란이 밀리면 저장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시 할인 판매를 하면서 소비자들은 계란이 원래 저렴한 품목으로 오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AI로 공급 부족 상황이 도래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수입대체가 어려운 품목이다 보니 수입창구가 마련되어 있지도 않았고, 유통비용 때문에 계란 가격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결론 및 시사점

“공급은 비탄력적이고 소비는 탄력적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물량을 늘리거나 줄이기 위해서는 보통 한 번의 사육주기나 재배주기가 필요하므로 개방이 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농산물의 공급은 비탄력적인 것이 맞다.

그러나 소비자는 가격에 따라 구매 의사를 결정하기 때문에 매우 탄력적으로 행동한다는 게 일반적 이론이다. 생존과 관련이 되는 필수재화의 경우에는 비탄력적인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공급이 부족해 가격이 오르더라도 소비를 줄이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급등하는 것이고, 반대로 공급이 늘어 가격을 내리더라도 가격을 인하한 만큼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 경향이 있어 가격은 더 내려가게 된다.

공급의 비탄력성을 수입품이 보완해 주는 품목은 그나마 가격의 진폭이 크지 않아 수급조절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수입대체가 불가능한 품목은 롤러코스터와 같이 오를 때는 크게 오르고 내릴 때는 크게 내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농가가 자처했다고 보는 것보다는 상품의 특성이 그렇고 소비자들이 원래 그렇게 행동한다고 보는 것이 맞으며,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기를 위한 조치는 어쩌면 소비자에게 더 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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