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68] 200여명이 근무하며 왕실에 우유를 공급하던 유우소(乳牛所)를 혁파하였다
[59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68] 200여명이 근무하며 왕실에 우유를 공급하던 유우소(乳牛所)를 혁파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3.1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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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84호, 양력 : 3월 15일, 음력 : 2월 9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 왕조실록에 왕실에 우유를 공급하기 위하여 병조(兵曹) 산하에 설치한 공상(供上) 아문(衙門)인 유우소(乳牛所)에 관한 기록은 10여건 정도로 태종(太宗)대에부터 세종(世宗)대 까지 나타나 있으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태종대에 의정부(議政府)에 명하여 대간(臺諫)에서 상소(上疏)한 것을 의논한 내용에 따르면, 경기(京畿)에서 궁중에 사용하던 어물(魚物), 육류(肉類) 등을 관할하던 사재(司宰), 토목(土木)과 영선(營繕)을 담당하던 선공(繕工), 가축 사육을 담당하던 사복(司僕), 유우소(乳牛所), 기와를 다루는 동서 와요(東西瓦窯) 등의 각사(各司)에 바치는 정제된 석탄인 정탄(正炭), 땔나무인 소목(燒木), 곡물의 짚인 곡초(穀草) 및 모든 수납(輸納)하는 물건을 농사가 한창 바쁜 때를 당하여 급히 징수하여 바치므로,

농업을 폐하게 해서 백성들이 생활하지 못할 지경이니. 각사에 바치는 공물은 1년 경비의 수(數)를 도합 계산하여, 반드시 추수한 이후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감독해 바치는 것으로 시행한 바가 있으며, 임금의 행차시 궁중에서 쓰는 장막(帳幕)을 담당하던 충호위(忠扈衛), 임금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을 맡은 사옹방(司饔房), 사복시(司僕寺), 유우소의 관원(官員), 제원(諸員)과 세수간 별감(洗手間別監)들이 잡인(雜人)을 용납해 두고도 고하지 않는 경우에는 엄히 논죄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유우소에 있던 수레를 끄는 소인 거우(車牛)의 반을 감한 것도 이 시기에 이루어 졌으며, 경기도관찰사(京畿都觀察使)가 구황사목(救荒事目)을 올렸는데, 굶주린 백성이 사복시, 유우소, 예빈시(禮賓寺), 전구서(典廐署), 채원(菜園), 빙고(氷庫), 목(牧), 감(監) 각처에 바치는 짚(藁)이 3만 9천 5백여 동인데, 교지(敎旨)에 의하여 실농이 더욱 심한 강화 교동(喬桐), 김포 통진(通津) 등 9현(縣)을 면제한 외에 그 나머지 각 고을에 나누어 정한 짚의 수량이 전의 배가 더 되고, 각 고을에서 받는 우마를 기르는 짚을 모두 백성에게 거두니,

오는 2월부터 4월까지 위의 항목의 각처에 바치는 짚을, 충청도(忠淸道)·강원도(江原道)의 실농하지 않은 각 고을에 금년만 한하여 옮겨 정하도록 계문(啓聞)하자 육조(六曹)에 내리어 의논하게 하였으며, 이렇게 운영되는 유우소(乳牛所)에 다시 유제품인 낙(酪)을 바치라고 명한 것도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 졌습니다.

세종대에는 사헌부에서 계하여, 유우소와 전구서(典廐署)의 사육용 볏집인 고초와 연료인 시목(柴木)의 수납을 그 기관의 관원이 홀로 이를 관장하고 있는데, 범람한 일이 많아서 그 폐단이 백성에게 미치고 있으니, 감찰(監察)에게 위임하여 규찰하도록 하게 하였으며, 이후에는 경성(京城) 안에 방호소(防護所)를 13개소에 설치하면서, 동면(東面)에는 유우소(乳牛所) 북점(北岾)에 1개소를 설치하여 유우소 기능을 축소하였으며, 1년후에는 동부 학당(東部學堂)을 북평관(北平館)으로 만들고, 유우소(乳牛所)를 동부 학당으로 만들면서 기능을 폐지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598전 오늘의 실록에는 병조에서 유우소(乳牛所)는 오로지 위에 지공(支供)하기 위하여 설치하였는데, 모든 인원 2백 명을 매년 전직하여 승직시켜 5품에 이르러 별좌(別坐)가 된다는 것은,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으니 혁파하여, 상왕전에 지공하는 유우(乳牛)는 인수부(仁壽府)에 소속시키고, 주상전에 지공하는 유우는 예빈시에 소속시키게 하며, 여러 인원은 소재한 주·군의 군(軍)에 보충하게 하자고 건의를 하자 그대로 따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 11권, 세종 3년 2월 9일 임인 기사 1421년 명 영락(永樂) 19년

병조에서 유우소 혁파에 대해 아뢰다

병조에서 계하기를,

"유우소(乳牛所)는 오로지 위에 지공(支供)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서, 모든 인원 2백 명을 매년 전직하여 승직시켜 5품에 이르면 별좌(別坐)가 된다는 것은, 능한가 능하지 못한가를 상고하지 아니하여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으니, 바라옵건대, 유우소를 혁파하고, 상왕전에 지공하는 유우(乳牛)는 인수부(仁壽府)에 소속시키고, 주상전에 지공하는 유우는 예빈시에 소속시키게 하고, 그 여러 인원은 소재한 주·군의 군(軍)에 보충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