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93] 목장에서 우마(牛馬)를 관리하는 목자(牧者)들의 정년은 60세이었다
[58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193] 목장에서 우마(牛馬)를 관리하는 목자(牧者)들의 정년은 60세이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4.19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9-209호, 양력 : 4월 19일, 음력 : 3월 15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각 목장에서 우마(牛馬) 사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목자(牧子)라 하였는데, 이들은 사찰에 소속된 사사노비(寺社奴婢), 관청에 소속된 노비인 공천(公賤), 향리(鄕吏), 양민 등으로 편성되었으며, 16세에서부터 60세까지 국가의 말을 사육하는 국역(國馬看養役)에 종사하였고 그 신분이 세습되었습니다.

목자의 직무는 마필(馬匹)을 사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여, 고려시대에는 1인당 말 4필, 조선 초기에는 10필을 사육하였으나, 그 뒤에 우마 25필로 증가하였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각 도의 목장에 암말 100필, 수말 15필로 1군(群)을 삼고 1군마다 군두(群頭) 1인, 군부(群副) 2인, 목자 4인씩을 배정하여, 종6품의 감목관(監牧官)의 지휘 감독 아래 매년 망아지인 자식(慈息) 생산 책임량을 85필 이상으로 규정하여, 목자 1인당 20여필 이상을 생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관리 소홀로 말이 손실되거나 죽을 경우 치죄하였으며, 말의 등급에 따라 많게는 오승포(五升布) 400-500필로 대납해야 했고, 이로 인한 목자의 가산 탕진이나 유망(流亡)이 빈번해 목자 우대책을 강구하여, 목자위전(牧子位田) 2결(結)을 지급하고 일종의 세금 면제인 복호(復戶)의 대상이 되었으며, 근무 성적에 따라 승진과 포상의 길도 마련해주어, 1년에 망아지 자식 20필 이상을 얻으면 상등, 15필 이상은 중등, 15필 이하는 하등으로 하여 30개월 내 상등을 3회 이상 받으면 승진해 임금을 주는 녹용(錄用)을 하였고, 이하인 자는 논죄를 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목자는 말 관리자 중 우두머리인 군두, 중앙 부처 관직인 경관직(京官職) 등으로 승진할 수 있는 보장책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실제로는 목자의 신분적 지위는 노비(奴婢)와 거의 마찬가지로 목장마 사육에 필요한 마료(馬料)의 준비, 목마군(牧馬軍)으로의 편성, 지방 특산물인 소와 말고기나 가죽 등 토산물 진상 등은 물론 감목관, 감사, 사복시, 점마별감 등 관원의 순행에 따른 수탈로 고통이 너무 심해 정처 없이 떠도는 유리(流離)를 하거나 도망하는 일이 잦아, 조정에서는 목자의 호적을 별도로 작성해 통제하기 까지 하였으며, 목자의 아들 중에 3명(丁)을 세습하도록 하고, 동거 친족 중의 1명은 다른 역을 면제해 목자역을 부담하도록 하는 규제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목자들 중에는 목장마를 부정으로 매각하거나, 개인 소유로 하는 사축(私畜)을 해서 매매하고 또 마필을 도살, 유실했다고 거짓 보고해 사복(私腹)을 채우는 일이 많아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582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각 목장의 목자(牧子)들이 마필을 보살펴 기르는(看養) 데 있어, 병들고 야위거나 죽거나 하면, 죄를 다스리고 보상을 받지마는, 경작하는 땅을 공식적으로 일구어 산물(産物)을 바치는 공부(貢賦) 이외에는 잡역(雜役)을 감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종실록 76권, 세종 19년 3월 15일 을사 기사 1437년 명 정통(正統) 2년

각 목자들에게 잡역을 감면시켜 간양에 전념하게 하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각 목장의 목자(牧子)가 마필을 보살펴 기르는[看養] 데 있어, 혹 병들고 야위거나, 혹 죽거나 하면, 죄를 다스리고 보상을 받지마는, 경작하는 땅의 공부(貢賦) 이외에는 잡역(雜役)을 감면하여 오로지 간양만을 위임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4책 76권 2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