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57] 군사 목적용 군량(軍糧)을 충당하는 둔전(屯田)에 농우(農牛)를 지급하게 하였다
[568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57] 군사 목적용 군량(軍糧)을 충당하는 둔전(屯田)에 농우(農牛)를 지급하게 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09.1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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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73호, 양력 : 9월 16일, 음력 : 8월 18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국방상의 요충지에 주둔하는 군사들로 하여금 돌보지 않고 버려 두어 거칠어진 진황지(陳荒地)나 토지대장인 전안(田案)에는 파악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경작되지 않는 황무지인 진전(陳田) 등을 개간·경작하여 그 수확물인 군량(軍糧)을 충당하도록 하는 군사 목적용 토지를 둔전(屯田)이라 하였는데, 군사 목적 외에 각 아문(衙門) 및 궁방(宮房)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둔전이 운영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이들 아문과 궁방(宮房)의 둔전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이러한 둔전은 운영하는 주체에 따라 군자(軍資) 재원을 보충하기 위해 국유지인 공전(公田)을 개간하여 설정한 국가의 직영지인 국둔전(國屯田), 지방 행정기관과 역(驛), 진(陣)의 부족한 재원을 보충하기 위해 절급(折給)해준 전지인 관둔전(官屯田)으로 구분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중앙관청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아문둔전(衙門屯田)을 설치하였습니다.

또한 둔전은 초기에는 군사(軍士)나 혹은 노비 등이 직접 사역하는 형태로 경영되었는데, 수령(守令)들이 자의적으로 백성을 동원하여 관둔전을 경작하기도 하였고, 그 수입을 관청의 운영 경비에 보태거나 자신들의 개인적인 지출 비용으로 충당하기도 하였으며,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을 거치면서 전쟁 피해 복구책의 일환으로 둔전을 설치한 후에는 전쟁으로 발생한 대량의 황무지를 개간하고 유민(流民)을 안집(安集)시키는 적절한 방법으로 둔전군(屯田軍)이라는 부역제적 경영 형태의 둔전 경작민을 두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전답(田畓)을 소유하고 있는 지주(地主)가 소작인(小作人)에게 전답을 빌려주어 농사짓게 하고 생산된 소출을 지주와 소작인이 나누어 갖는 농업경영방식인 병작제(竝作制)가 둔전 경영의 일반적인 형태로 채택됨에 따라 둔전 노동력을 지칭하는 말로 둔전민(屯田民)이라는 말이 많이 쓰였으며, 농업 기술이 발전하고 무주지(無主地)에 대해 국가로부터 일종의 토지 소유권 증명서인 입안(立案)을 발급받거나 전조(田租)의 수조권(收租權)을 지급받는 절수(折受)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면서 병작제가 확대되었고, 민간이 소유하고 있는 민전(民田) 위에 곡물 수확권을 갖는 수조지(收租地)로 설정되는 둔전, 실제 토지가 지급되지는 않으면서 일정한 수세량(收稅量)만을 규정하는 무토(無土)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었습니다.

568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의정부에서 병조(兵曹)의 정문(呈文)에 의하여, 황해도의 벼농사가 모두 풍성하게 익지 않자, 나라에서 토목 공사(土木工事)를 할 때에 그 지역에서 대규모로 징발하던 일반 민호(民戶)의 장정인 연호군(煙戶軍) 5천 명을 부역(赴役)하지 말도록 하였고, 묵은 논 21결(結)과 묵은 밭 20결을 둔전(屯田)의 장소로 정하고, 농우(農牛)를 황해도에 소재한 목장(牧場)의 아마(兒馬)로 20두(頭)를 바꾸어 지급하고, 농기(農器)는 관찰사영(觀察使營) 회계부(會計付)의 잡물로 매매 교환하여 조달하게 하고 있습니다.

 

■문종실록 9권, 문종 1년 8월 18일 계미 기사 1451년 명 경태(景泰) 2년

의정부에서 황해도의 연호군을 부역시키지 말도록 청하다

의정부에서 병조(兵曹)의 정문(呈文)에 의하여 아뢰기를,

"황해도의 벼농사가 모두 풍성하게 익지 않았으니, 그 연호군(煙戶軍) 5천 명으로 하여금 부역(赴役)하지 말도록 하소서. 또 극성(棘城) 서쪽 5리(里) 쯤의 옛 단림역(丹林驛) 아래에 묵은 논 21결(結)과 극성 동쪽 8리 쯤의 원(院) 머리에 묵은 밭 20결은 그 지질이 쓸 만하니, 청컨대 둔전(屯田)의 장소로 정하고, 농우(農牛)는 본도 내의 소재한 목장(牧場)의 아마(兒馬)로 20두(頭)를 바꾸어 얻고, 농기(農器)는 관찰사영(觀察使營) 회계부(會計付)의 잡물로 매매 교환하여 지급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5책 9권 11장

【주】연호군(煙戶軍) : 나라에서 토목 공사(土木工事)를 할 때에 그 지역에서 대규모로 징발하던 일반 민호(民戶)의 장정

      결(結) : 토지의 단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