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80] 전라도에 농우(農牛)가 부족하자 평안도에서 1천여 두를 조달하였다
[244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80] 전라도에 농우(農牛)가 부족하자 평안도에서 1천여 두를 조달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12.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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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95호, 양력 : 12월 9일, 음력 : 11월 13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왕조실록에 농우(農牛) 에 대한 기록은 원문으로는 300여건, 국역으로는 180여건의 기사가 실려 있으며, 임금대별로 주요 내용은 차이가 있으나, 주로 농사를 짓기 위해 소를 조달하는 내용과 소를 도살하는 것을 막는 금령인 우금(牛禁)이나 북방 민족과의 교역관련 내용이 많으며, 기사 수록 건수로는 임진왜란(壬辰倭亂)이후 마소(牛馬)가 적에게 다 노략당하여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어 농우 확보에 주력했던 선조(宣祖) 대에 30여건의 기사가 있으나, 그 다음으로는 영조(英祖)대에 기사가 많은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팔도(八道)와 개성과 강화도인 양도(兩都)에 농사를 권면하는 유시(諭示)를 내려, 농사를 권면하는 방도에는 여섯 가지 요령이 있는데, 농사철에 부역을 시키지 말 며, 백성으로 하여금 안정된 삶을 누리게 할 것, 농사지을 동안 먹을 양식인 농량(農糧)을 보조하여 줄 것, 농기구와 농우(農牛)를 갖추어 지급하여 줄 것, 저수하기 위해 축조된 제방과 방죽인 제언(堤堰)과 관개(灌漑) 시설을 갖출 것, 나태한 마음을 경칙(警飭)시킬 것 등을 지적하며, 방백(方伯)과 수령(守令)은 이런 지극한 뜻을 본받아 나태함이 없이 더욱 면려하도록 한 바가 있습니다.

또한 전라 감사(全羅監司)가 도내(道內)에 농우(農牛)가 적다는 이유로써 제주(濟州) 목장(牧場)의 소 1천여 두(頭)를 보내게 해 줄 것을 청하였으나, 호조판서가 제주의 소는 본디 1천 두에 불과하고 그중 매년 빛깔이 검은 소는 20두씩을 가려서 한양에 경사(京司)로 보내어 희생(犧牲)에 제공하고 있어 지급하는 것이 부당하다며, 평안도 일원의 관서(關西)의 둔전(屯田)에 있는 소 1천여 두를 보내게 하자고 하자 그렇게 하라고 한 바가 있습니다.

예조 판서(禮曹判書)가 임금이 밭을 직접 가는 친경(親耕)의 절차를 보고하면서, 쟁기를 다섯 번 미신 뒤에 대신(大臣)과 종신(宗臣)이 좌우에서 나란히 밭을 갑니다마는, 한 이랑 사이에 소 두 마리가 들어가기 어려워서, 하나는 짝지어 서서 나란히 가고 하나는 앞뒤로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하자, 임금이 짝지어 서고서야 나란히 가는 것이 될 수 있으니, 그런 식으로 의주를 정하도록 하면서, 친경 후에 수고를 위로하기 위하여 마시는 술인 노주(勞酒) 때에는 소를 잡아서 음식을 장만해야 하겠으나, 친경하여 농사를 권장할 때에 농우(農牛)를 죽일 수 없으니 돼지로 갈음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헌부(憲府) 지평(持平)은 우역(牛疫)이 극성을 부려 농우(農牛)가 열에 여덟·아홉이 없어졌으니 내년 경작이 진실로 염려된다며, 그럼에도 매번 세시(歲時)를 당하여 여러 날 금령(禁令)이 느슨해지면 도살(屠殺)이 수도 없으니, 만약 다시 이와 같이 한다면 백성들은 장차 농사를 그만두게 될 것이므로 경외(京外)에 신칙하여 일체 금단(禁斷)토록 하도록 보고 바가 있으며, 좌의정은 함경도와 평안도를 관장하는 북평사(北評事)가 종자(種子)와 농우(農牛)를 먹일 콩 2만 석을 얻기를 청하였는데, 영남(嶺南)의 곡물도 바닥이 드러난 상태로 포항(浦項) 창고의 벼(租)와 콩(太) 각각 5천 석을 획급(劃給)하도록 하였는데, 콩은 포항에 있는 것도 역시 매우 부족하다고 하니, 다른 것으로 회부(會付)하여 변통하여 보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아뢴바가 있습니다.

한편, 전 함경 감사가 우역(牛疫)이 크게 치성한 까닭에 회령(會寧)·경원(慶源)에서 청나라 차원(差員)이 무역 교역을 위한 개시(開市)를 할 때에 농우(農牛)를 매매하던 것을 금단하도록 장청(狀請)하였으나, 그들은 개시 때 오로지 소를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한 결 같이 엄히 막으면 말썽을 일으킬까 염려되고, 근일에 우역도 자못 그쳤다고 하니, 도신(道臣)으로 하여금 조금 팔도록 허락하는 것이 어떠냐는 영의정의 보고를 받고 왕세자가 가납하기도 하였습니다.

244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임금이 한때의 식욕(食慾)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는 농우(農牛)를 잡아 죽이는 것을 어찌 차마 하겠느냐며, 중첩된 도살이나 사사로이 도살하는 것을 엄중히 금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조실록 125권, 영조 51년 11월 13일 병술 기사 1775년 청 건륭(乾隆) 40년

중첩된 도살이나 사사로운 도살을 엄금하다

하교하기를,

"한때의 식욕(食慾)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는 농우(農牛)를 잡아 죽이는 것을 어찌 차마 하겠느냐? 중첩된 도살이나 사사로이 도살하는 것을 엄중히 금하게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2책 125권 1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