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83] 세자(世子)가 금빛 고양이를 구하였으나 구경하지 못하게 하였다
[602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83] 세자(世子)가 금빛 고양이를 구하였으나 구경하지 못하게 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12.20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19-298호, 양력 : 12월 20일, 음력 : 11월 24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왕조실록에 고양이(猫)에 관한 기록은 90여건으로 주로 비유적으로 많이 쓰여, 관리들을 감찰할 때 ‘고양이를 기르는 집에는 쥐가 함부로 다니지 않는다(猫畜之家, 鼠不肆行).’거나 대신들을 교체하면서 새로운 인물이 특징이 없으면 ‘고양이로 고양이를 바꾼 격이다(以猫易猫).’라는 표현이 여러 번 있으며, 가축으로서는 중국에 진헌(進獻)한 공물 중에 고양이가 포함된 기록이 있고, 고양이 가죽(猫皮), 약용으로 쓰인 묘골(猫骨)에 대한 기사도 일부 실려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 중에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에 고양이 관한 주요한 기사를 살펴보면, 우선 성종(成宗)대에는 표류(漂流)했던 제주(濟州)사람들이 일본 근처의 유구국(琉球國)으로부터 돌아와 여러 섬의 풍속(風俗)을 말하면서, 윤이시마(閏伊是麿)라는 섬에는 집에 쥐, 소, 닭, 고양이가 있으나, 사람들이 소와 닭의 고기를 먹지 않았고 죽으면 곧 묻었으며, 소, 닭의 고기는 먹을 만한데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자, 섬사람들은 침을 뱉으면서 비웃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무령군(武靈君)이 대간(臺諫)에 보임이 잘못되었다고 상소하면서, 자신의 집에 일찍이 쥐가 설치는 것을 근심하여 고양이를 몇 마리 구해다가 길렀는데, 고양이의 성질이 유약(柔弱)하여 쥐 잡는 데는 뜻이 없어, 쥐들이 대낮에도 설쳐대며 겁을 내고 꺼리는 바가 없고, 곳간에는 멀쩡한 그릇이 없으며, 집안에는 성한 옷이 없을 지경이 되어, 이웃집의 고양이가 쥐를 잘 잡는다는 것을 듣고 후한 값을 주고 데려다 길렀더니, 기른 그날부터 쥐들이 모두 구멍 속으로 숨고는 감히 함부로 다니질 못하였다면서, 비록 고양이를 기르는 집안에는 쥐가 함부로 나다니지 못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된 고양이를 기르지 않으면 쥐가 혹 함부로 나다니기도 하는 것이라며, 임금이 굽어 살피시어 재단(裁斷)하도록 건의한 바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의금부(義禁府)의 죄수(囚人) 중에 고양이 가죽인 묘피(猫皮)를 다른 모피 대신 바친 일로 갇힌 자가 매우 많으나 실정(實情)을 밝히기 어려울 것이라는 특진관(特進官)의 보고에, 임금이 고양이와 삵괭이는 쉽사리 구분할 수 있는데, 관리(官吏)가 알지 못한 것은 잘못된 일로 처음부터 알고서 바쳤다면 윗사람을 속인 것이고, 알지 못하고 바쳤다면 옳지 못한 일로 끝까지 추국(推鞫)하여 죄를 다스리려고 하였으나, 중신들이 일이 사소한 것으로 갇힌 자가 많으니, 내버려 두는 것이 편하겠다고 보고하자, 갇힌 사람이 많고, 날씨가 추우니 내버려 두도록 한 바도 있습니다.

연산군(燕山君) 대에는 내관(內官) 등이 왕실 대내(大內)의 고양이로 대궐 안의 음식에 관한 일을 관장한 사옹원(司饔院)에서 쥐를 잡다가 고양이를 놓치자, 금부(禁府)에서 형장 심문하도록 하교한 바도 있습니다.

한편, 중종(中宗) 대에는 함경도 영흥(永興)의 관비(官婢)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등 위와 배 아래에 각각 네 발이 달린 새끼를 낳았는데 어미와 새끼가 함께 죽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명종(明宗) 대에는 경상도 영덕현(盈德縣)에서 아전의 집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몸뚱이는 하나고 머리는 둘로, 얼굴·코·눈·입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며, 왼쪽 입은 제대로 울어 소리가 나오고 오른쪽 입은 벌렸다 오무렸다 만 할 뿐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602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세자(世子)가 금빛 고양이를 구하니, 왕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관리인 서연관(書筵官)이 보고하기를, 이 물건이 비록 사냥할 때 쓰려고 길들인 매와 개인 응견(鷹犬)에 비교할 것은 아니나 구경하고 좋아할 수 없는 것이고, 또 재상의 집에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자, 세자가 금빛 나는 고양이는 숫놈이 적다고 사람들이 말하기에 한번 보고 돌려보내려고 한 것이라고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태종실록 34권, 태종 17년 11월 24일 을해 기사 1417년 명 영락(永樂) 15년

세자가 금빛 고양이를 구하려 하다

세자(世子)가 금빛 고양이를 신효창(申孝昌)의 집에 구하니, 신효창이 청구하는 것을 좇지 않고 빈객(賓客) 탁신(卓愼)에게 고하였다. 탁신이 서연관(書筵官)을 불러 말하니, 이에 서연관이 헌언(獻言)하기를,

"이 물건이 비록 응견(鷹犬)에 비교할 것은 아니나 구경하고 좋아할 수 없는 것이고, 또 재상의 집에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니, 세자가 말하였다.

"사람들이 항상 말하기를, ‘금빛 나는 고양이는 숫놈이 적다.’고 하기에, 보고 돌려 보내려고 한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15책 34권 3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