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86] 왕실 정원에서는 공작(孔雀), 비둘기, 노루, 사슴, 여우, 원숭이 등을 사육하였다
[594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86] 왕실 정원에서는 공작(孔雀), 비둘기, 노루, 사슴, 여우, 원숭이 등을 사육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9.12.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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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01호, 양력 : 12월 30일, 음력 : 12월 5일

[팜인사이트=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초기 궁궐 내 정원을 관리하고 과일, 화초 등에 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를 상림원(上林園)이라 하였는데, 당초 동산색(東山色)이라 불리던 것을 개칭한 것으로 진기한 동물들이 진상되면 이의 사육을 담당하기도 하였고, 후에 장원서(掌苑署)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실록에 실려 있는 60여건의 기사 중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태조(太祖)대에는 임금이 수정포도(水精葡萄)를 먹고 싶어 하여, 세자와 여러 왕자에게 교지를 전하자, 상림원사(上林園)의 서리직(胥吏職)인 상림원사(上林園史)에게 명하여 개성 유후사(留後司)와 기내 좌도(畿內左道) 등에 널리 구하였는데, 마침 종4품인 경력(經歷)이 산포도가 서리를 맞아 반쯤 익은 것을 한 상자를 가지고 와서 바치니, 임금이 크게 기뻐한 것으로 적고 있으며,

태종(太宗)대에는 대마도 수호(對馬島守護)가 사신을 보내어 남번(南蕃)의 배를 노략하여 얻은 염료나 약재로 쓰이는 소목(蘇木), 향신료로 쓰이는 호초(胡椒)와 공작(孔雀)등 토산물을 바치자, 사간원에서는 진기(珍奇)한 새와 짐승은 나라에서 기르지 않는 것으로 특히 겁탈해 빼앗은 물건은 물리쳐 받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상언(上言)하였으나, 임금이 먼데 사람과의 관계를 중하게 여기어, 공작을 상림원(上林園)에서 기르라고 명령한 바가 있습니다.

또한, 정6품 잡직(雜職)인 사약(司鑰)을 강원도(江原道)에 보내어 상림원(上林園)의 나무에 접목하기 위한 좋은 배나무 가지(梨枝)를 구하기도 하였고, 상림원 별감(上林園別監)을 제주(濟州)로 보내어, 감귤(柑橘) 수백 주(株)를 순천(順天) 등의 바닷가에 위치한 고을에 옮겨 심게도 하였으며, 검교 한성윤(檢校漢城尹)에게 명하여 어린 남자 애들인 동남(童男) 수십 인을 모아서 도마뱀(蜥蜴)으로써 상림원(上林園)에서 3일 동안 비를 빌기도 하였습니다.

세종(世宗) 대에는 상림원 별감(上林院別監)들이 경복궁(景福宮) 정원(庭園) 안의 노루와 사슴을 맡아 기르면서, 번(番)을 나갈 때에 마음을 쓰고 교부(交付)하지 않아서 짐승을 죽게 하였으므로, 잡아와 본원(本院)의 종을 삼도록 전지(傳旨)하였으며, 상림원(上林園)의 화초(花草)와 집비둘기를 자원하는 사람에게 명하여 나누어 주게 하였고, 평안도에서 검은 여우(黑狐)를 잡아서 바치니, 상림원(上林園)에서 이를 기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제주 안무사(濟州安撫使)가 원숭이(獿子)와 노루(獐) 한 쌍을 바치자, 명하여 상림원(上林園)에서 기르다가, 나중에 인천(仁川) 용류도(龍流島)로 옮겨 놓아준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대마도(對馬島)에서 사람을 보내 목부용(木芙蓉) 3그루와 양매목(楊梅木) 1그루를 바치자, 상림원(上林園)에 심으라 하였고, 경기도와 충청도 감사에게는 한양 도성(都城) 사산(四山)인 백악산(白岳山), 인왕산(仁王山), 남산(南山), 낙산(駱山)의 소나무가 벌레의 피해로 말라 죽기가 쉬우므로 밤나무를 심으려고 하니, 밤 종자 10여 석을 준비하여 상림원(上林園)으로 보내도록 지시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상림원(上林園)에서 배(生梨)가 지극히 귀하여, 진상하는 외에는 여러 곳에 보내지 말도록 건의하자, 보내는 곳을 갖추 적어 보내도록 명하면서 어서(御書)로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여 상림원의 관리가 공상(供上)하는 과물(菓物)은 대개 잘고 나쁜 것을 쓰고, 대신들이나 여러 곳에는 품질이 좋은 것을 선택하여 보내고 또 상지(上旨)도 없이 사사로이 스스로 증유(贈遺)하여 대신에게 아부하고, 심지어는 사가(私家)의 연회에도 드러내놓고 증송(贈送)하니 전혀 임금을 위하는 뜻이 없으니 추핵하여 아뢰도록 하기도 하였습니다.

594년 전 오늘의 실록에는 임금이 왕명의 하달을 맡은 대언(代言) 등에게 이르기를, 고라니(麋)와 사슴을 기르고, 화초를 키우는 것은 본래 긴요한 일은 아니며, 임금 자신은 꽃과 새를 구경하는 일을 좋아하지 아니하지만, 옛날 중국의 문왕(文王)의 동산에는 기러기, 고라니, 사슴이 있었으며, 한(漢)나라에도 왕실의 원림에서 일하는 낮은 벼슬인 상림 색부(上林嗇夫)가 있었으나, 지금 상림원(上林苑)에서는 새와 짐승과 꽃과 과실나무를 맡아 다스리는 일에 마음과 뜻을 모아 하지 않고 있으니, 그 일을 주관하는 제조(提調)에게 말하여, 과실나무와 심어 놓은 식물(植物)들이 무성하게 잘 자란다면 국가의 용도에도 보탬이 있을 것이라고 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종실록 30권, 세종 7년 12월 5일 경오 기사 1425년 명 홍희(洪熙) 1년

상림원의 새·짐승·꽃·과실나무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대언 등에게 이르다

임금이 대언(代言) 등에게 이르기를,

"고라니[麋]와 사슴을 기르고, 화초를 키우는 것은 본래 긴요한 일은 아니다. 또 나는 꽃과 새를 구경하는 일을 좋아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옛날 중국의〉 문왕(文王)의 동산에는 기러기·고라니·사슴이 있었으며, 한(漢)나라에는 상림 색부(上林嗇夫)가 있었으니, 지당(池塘)과 누대(樓臺)와 새와 짐승은 옛날부터 있는 것이다. 지금 상림원(上林苑)에서는 새와 짐승과 꽃과 과실나무를 맡아 다스리는 일에 마음과 뜻을 모아 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대들은 〈그 주관하는〉 제조(提調)에게 말하라. 만약 과실나무와 심어 놓은 식물(植物)들이 무성하게 잘 자란다면 또한 국가의 용도에도 보탬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0책 30권 20장

【주】상림 색부(上林嗇夫) : 임금의 원림에서 일하는 낮은 벼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