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이력제 시행 유통단계 추가 비용 연간 '160억 원'
돼지이력제 시행 유통단계 추가 비용 연간 '160억 원'
  • 옥미영 기자
  • 승인 2021.12.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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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축장 75억 원‧가공 및 판매단계 86억 원 소요

축산물처리협, ‘돼지고기 이력제 운영 현황’ 연구 조사 발표

도축업계 “돼지이력제 유지‧보수 비용 현실화해야” 한목소리
돼지 도축장 작업 모습(도축장에선 이력번호 자동표시기와 별도로 도축번호를 표시하고 있어 이중 작업에 시달리고 있다.)
돼지 도축장 작업 모습(도축장에선 이력번호 자동표시기와 별도로 도축번호를 표시하고 있어 이중 작업에 시달리고 있다).

[팜인사이트= 옥미영 기자] 돼지고기 이력제 시행으로 인한 도축장들의 추가 운영비용이 연간 75억 원에 달하고, 가공 및 판매단계에서의 추가비용은 86억 원에 이르는 등 돼지이력제로 인한 유통단계 비용이 연간 160억 원이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축산물처리협회(회장 김명규)가 동국대학교 식품산업관리학과 지인배 교수팀에 의뢰해 실시한 ‘돼지고기 이력제 운영 현황과 개선과제’에서 이같이 조사됐다.

지난 11월 30일 축산물처리협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연구용역 최종 보고회에서 지인배 교수는 돼지이력제로 도축장들이 추가 부담하는 비용은 마리당 산출시 인건비 307원, 수선유지 60원, 잉크와 헤드교체에 각각 15원과 8원 등 총 409원 수준이라고 밝혔다. 

가공 및 판매단계에서도 인건비와 기계운영으로 마리당 471원이 투입된다. 업체들이 분담하는 비용을 지난해 총 도축마릿수 1832만9959두를 곱해 계산하면 161억원에 달한다.

이는 축산물처리협회가 도축 및 가공과 판매단계에서의 비용을 자체 산출한 162억원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막대한 비용 투입에도 제도 실효성은 ‘낙제’

도축장 및 유통업계가 제도 운영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자체 부담하고 있지만 정작 제도의 실효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돼지와 돼지고기의 거래단계별 정보를 관리해 문제 발생시 이동 경로를 역추적해 조치하고 소비자에겐 이력정보 제공으로 국내산 돼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안전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2014년 12월 28일 돼지고기 이력 제도를 전면 시행했다.

하지만 도축장에서 유통과정이나 소비자 클레임 발생시 원인을 추적하는 등 이력번호의 활용 경험은 평균 30%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력번호 활용 경험과 관련한 설문에서 '위생문제 발생시 원인을 추적했다'는 응답은 26.3%로 집계됐고, '소비자 클레임 발생시 원인 추적'은 28.9% 였다. '가축개량을 위한 이용'은 18.4%,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이력추적'도 21.1%에 그쳤다.

보다 근본적 문제는 이력번호 부여가 워낙 복잡(20~21자리)한 데다 수 십 여개 농장을 하나의 묶음번호로 작업하다 보니 제대로된 이력추적이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공 및 판매단계까지 거칠 경우 성별과 등급 등 분리 가공‧포장이 어려워 사실상 이력 추적은 불가능해진다.

문제 발생시 이동 경로를 역추적해 조치하겠다는 제도의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가 이력번호를 조회할 경우 수 십 여개 농장이 추적된다. 30여개의 농장을 도축장 작업날짜로 묶음으로 표시하기 때문인데, 이로인해 이력추적은 거의 불가능해 제도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소비자가 이력번호를 조회할 경우 수 십 여개 농장이 추적된다. 30여개의 농장을 도축장 작업날짜로 묶음으로 표시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이력추적은 거의 불가능해 당초 돼지 이력제도를 도입한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사진자료: 연구조사 자료 중). 

 

제도 실효성 낮은데 도축장 부담만 높아

이처럼 현장에서 체감하는 돼지이력제의 실효성은 매우 낮지만 이력제 시행으로 도축장이 부담해야 하는 추가 비용은 만만치 않은데다 이력번호 표시기의 잦은 고장으로 작업에 지장이 생기면서 도축장들의 경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돼지이력번호와 관련한 38개 도축장들 조사 결과 평균 고장 횟수는 11.1회이며, 업체 서비스 이용횟수는 평균 5.4회, 평균 서비스 대기일은 7.9일로 고장 발생시 최고 1주일 이상 대기해야 한다.

돼지고기 이력제와 관련해 도축장들은 잦은 고장은 물론 고장시 수기 표기로 인한 또 다른 인건비 발생, 수리업체 수가 단 한곳에 불과해 자가수리를 해야하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연구조사 결과 나타났다.

도축장 이력번호 표시와 관련해 정부는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자동 표시 장비와 잉크, 유지보수에 약 70억원을 지원했지만 도축장들의 자체 부담금에 비해 지원금은 터무니 없다는게 도축업계의 입장이다.

돼지이력제 운영비용 지원 ‘현실화해야’

지인배 교수는 돼지고기 이력제의 개선방안과 관련해 20자리가 넘는 돼지도체 이력번호 표시를 간소화해 긴 숫자 표기로 인한 잦은 고장과 잉크 낭비를 줄이고, 돈피 상품성 저하를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가축 및 축산물이력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도축번호를 해당 도체에 표시하거나 도축 후 식육포장처리업체로 도체가 이동될 경우 임의의 도축번호를 표시할 수 있도록 시행규칙을 재정비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날 최종보고회에 참석한 도축장 관계자들은 돼지고기 이력제와 관련해 도축장들의 경영 부담이 높은 반면, 개선방안은 다소 미흡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A 도축장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알권리를 제공한다는 큰 틀에서 돼지고기 이력제에 큰 변화를 주기는 어렵다고 본다”면서도 “제도 유지를 위해 이력번호를 줄이기에 앞서 도축업계가 분담하는 비용이 연간 수 십 억 원에 달하는 만큼 어느 단계에서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에 구체적 방안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규 회장은 “축산물품질평가원의 1년 예산에서 돼지이력제를 위한 도축장들의 비용지원은 2억5천만원에 불과해 실제 수요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서 “돼지이력제도가 최초 도입된 후 7년이 흐르면서 기기 교체가 필요한 도축장들까지 생기고 있는 만큼 돼지이력제 운영을 위한 예산은 반드시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축산물처리협회는 도축장들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연구 보고서에 반영해 정부에 이를 정식 건의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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