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3년전 오늘 - 축산 소식102] 마패(馬牌) 중에는 말 5마리를 내주는 오마패(五馬牌)가 있었다
[583년전 오늘 - 축산 소식102] 마패(馬牌) 중에는 말 5마리를 내주는 오마패(五馬牌)가 있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12.05 1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 18-118호, 양력 : 12월 5일, 음력 : 10월 28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에 공무(公務)로 지방에 출장 가는 관원들이 역마(驛馬)를 사용하기 위해 지급받던 증표를 마패(馬牌)라 하였습니다.

마패를 지급받기 위해서는 먼저 왕명(王命)으로 나가는 관원들이 병조(兵曹)에 가서 그 등수(等數)에 따라 증서(帖)를 내주고, 나라의 공무에 사용하는 도장이나 각종 증명과 표식인 패(牌)를 관리하는 상서원((尙瑞院)에서 임금에게 아뢴 뒤 지급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마패는 관찰사와 절도사에게도 지급되었는데 이들이 임금에게 보고할 일이 있거나 진상할 경우에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고하거나(復命) 교체되어 돌아갈 때에는 즉시 반납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외방(外方)으로 말을 주어 내려 보낸 관원이 임지에 도착하면 관찰사(觀察使)와 절도사(節度使)는 마패를 검사하고 봉(監封)한 다음에 한양을 올려 보내어 상서원에 도착하도록 해야 했으며, 만약 기한 내에 보내지 않으면 받아 간 사람은 무겁게 추고(推考)를 당하였고, 마패를 분실하면 일반적인 분실에 해당하는 죄보다 무겁게 처벌하였습니다.

마패는 처음에는 단단하고 향이 있는 산유자(山秞子) 나무로 모양을 둥글게 제작하였는데, 자주 상하고 쪼개진다는 건의를 받아 들여 세종(世宗)대에 철로 만든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마패의 표시는 한 면에 마자(馬字)를 전자(篆字)로 써서 각인(烙印)하고 다른 한 면에는 일마(一馬)부터 말 5마리를 사용할 수 있는 오마(五馬)까지를 표시하였는데, 이후 구리로 만들면서 품계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말의 수 외에 천자문(千字文)으로 된 자호와 연월(年月), 상서원인(尙瑞院印)이라는 네 글자의 전인(篆印)을 새겨 넣었습니다.

583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새로 주조(鑄造)한 마패(馬牌)를 각도의 관찰사 등에게 나누어 주고 구패(舊牌)를 회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 70권, 세종 17년 10월 28일 병인 기사 1435년 명 선덕(宣德) 10년

새로 만든 마패를 나누어 주고 구패를 회수하다

새로 주조(鑄造)한 마패(馬牌)를 각도의 관찰사·절제사·수군 처치사·개성 유후사(開城留後司)에 나누어 주고 구패(舊牌)를 회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2책 70권 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