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년전 오늘 - 축산 소식104] 임금들이 직접 말을 타고 공을 치며 즐긴 로얄 스포츠는 격구(擊毬)
[594년전 오늘 - 축산 소식104] 임금들이 직접 말을 타고 공을 치며 즐긴 로얄 스포츠는 격구(擊毬)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12.0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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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120호, 양력 : 12월 7일, 음력 : 11월 1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말을 달리며 채 막대기로 공을 쳐 구문(毬門)에 넣는 경기이자 무예(武藝)를 격구라 하였습니다. 격구는 서양 귀족 스포츠인 폴로(polo)와 비슷하지만, 공을 치는 막대기인 장시(杖匙)의 끝이 둥근 원통 나무로 치는 것이 아니라 소코뚜레와 같은 형태로서 공을 떠 돌리거나 던져 구문에 넣는 방식입니다.

격구는 원래 페르시아에서 시작하여 북방민족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개경(開京)에 격구장이 별도로 만들어 질 정도로 인기가 높아 매년 단오(端午)날에는 임금이하 관리와 일반 백성, 부녀자들까지 격구를 관람할 정도로 발전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실록에 격구에 관한 기록은 200여건이 나타나 있으며, 주로 조선 초기 세종(世宗)대에 까지 많은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실제로 기사 중에는 임금들이 직접 격구를 직접 즐긴 것이 나타나 있는데, 임금별로는 태종(太宗)이 가장 많은 30여 차례 이상 경기를 하였고, 세종(世宗)도 10여 차례 직접 격구를 하였으며, 워낙 고려시대부터 격구로 명성을 얻은 대표적인 무인(武人)인 태조(太祖) 이성계는 63세의 고령에도 격구를 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격구에 가장 애착을 많이 보인 임금은 2대 정종(定宗)으로 재임기간 2년동안 10여차례 격구를 하였으며, 대신들이 격구를 말리자 ‘병이 있어 수족이 저리고 아프니, 때때로 격구를 하여 몸에 기운을 통하게 하려고 한다.’고 핑계를 대기도 하고, 사관(史官)에게 ‘격구하는 일 같은 것도 또한 사책에 쓰는가?’고 핀잔을 주기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격구는 세종(世宗)대에 단순한 놀이가 아닌 마상(馬上)에서 무예를 연마하기 가장 좋은 과목이라 하여 과거(科擧) 무과시험(武科試驗)으로 채택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총포류(銃砲類)의 발달에 따라 제외되기도 하였습니다.

594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임금이 내정(內庭)에서 종친(宗親)들과 격구(擊毬)하고 작은 연회를 베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 26권, 세종 6년 11월 1일 임신 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내정에서 격구를 하고 연회를 베풀다

내정(內庭)에서 격구(擊毬)하고 작은 연회를 베풀었는데,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경녕군(敬寧君) 이비(李)·공녕군(恭寧君) 이인(李䄄) 등과 종친·부마·청평 부원군(淸平府院君) 이백강(李伯剛)·평양 부원군(平壤府院君) 조대림(趙大臨)이 입시하였다. 백강(伯剛)에게 내구마(內廐馬) 한 필을 주었으니, 격구(擊毬)에 이겼기 때문이었다.

【태백산사고본】 9책 26권 2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