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년 전 오늘 - 축산 소식32] 도살을 금지하고 짐승의 뼈를 묻는 조선의 가뭄 10가지 대책
[566년 전 오늘 - 축산 소식32] 도살을 금지하고 짐승의 뼈를 묻는 조선의 가뭄 10가지 대책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8.14 1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 18-48호, 양력 : 8월14일, 음력 : 7월 4일

조선왕조실록에 가뭄에 대한 기록은 3천4백여 건에 달할 정도로 가장 큰 천재(天災)중에 하나로 다양한 대책이 강구되었습니다. 가뭄에 대한 대책은 시대별로 차이가 있으나 태종(太宗)때 예조(禮曹)에서 올린 사의(事宜)를 기준으로 보면 가뭄이 들면 우선 산천(山川)으로 구름과 비를 일으킬 수 있는 곳에서 제사하며, 또 사직(社稷)과 종묘(宗廟)에서 7일마다 한 번씩 빌고,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다시 기우(祈雨)하기를 처음과 같이 행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그래도 가뭄이 심하면 우제(雩祭)를 지내는데, 처음에 빈 뒤 10일이 되어도 비가 안오면 상인들이 물건을 파는 저자(市)를 옮기고, 도살(屠殺)을 금하며, 임금이 쓰던 햇볕을 가리는 산선(傘扇)을 끊고, 또 가뭄이 있으면 원통한 옥사(獄事)를 심리(審理)하고, 궁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며, 뼈를 덮고 썩은 고기를 묻으며, 도랑(溝洫)을 치고 밭둑길인 척맥(阡陌)을 깨끗이 치우는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임금은 근신한다는 의미에서 술을 끊는 철주(輟酒)와 수랏상의 반찬을 줄이는 감선(減膳) 산이나 들에서 짐승을 잡는 전렵(田獵)을 금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농사철에 가뭄이 심하면 장터를 옮기는 사시(徙市)는 장안에서는 점포를 닫고 거리로 나오는 항시(巷市)를 하지만, 지방에서는 시장을 강가 또는 평소 물에 잠겨 있는 곳으로 옮겨 시끄럽게 하여 잠자는 용(龍)을 깨워 비를 내리게 하려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66년전 오늘의 실록에는 가뭄에 대비하여 전답(田畓) 사이에 도랑을 깨끗이 치우고, 드러난 뼈를 덮어 주고 짐승의 뼈를 묻어주자는 논의를 하였습니다.

 

■단종실록 2권, 단종 즉위년 7월 4일 을미 기사 1452년 명 경태(景泰) 3

전답 사이의 도랑을 수리하고 밭둑길을 깨끗이 하게 하는 등 가뭄에 대비하게 하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이제 화곡(禾穀)의 이삭이 피어날 때를 당하여 비가 흡족하지 못하여 매우 염려가 되니, 청컨대 구혁(溝洫)을 수리하고, 천맥(阡陌)을 깨끗이하며 원통한 옥사(獄事)를 심리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진휼하고 드러난 뼈를 덮어 주고 짐승의 뼈를 묻어 주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장

【註】 구혁(溝洫) : 전답의 사이에 있는 도랑

         천맥(阡陌) : 밭둑길. 동서가 맥(陌), 남북이 천(阡)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