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자연만 출입했던 금단의 숲”···산림 코디네이터 산림청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반세기 자연만 출입했던 금단의 숲”···산림 코디네이터 산림청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 박현욱 기자
  • 승인 2020.06.01 0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림청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진뱅크(Gene Bank)에는 단기 종자 21만 6천 점, 중·장기 종자 7만 2천 점이 보관돼 있는 산림종자의 보물창고다.
산림청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진뱅크(Gene Bank)에는 단기 종자 21만 6천 점, 중·장기 종자 7만 2천 점이 보관돼 있는 산림종자의 보물창고다.

[팜인사이트=박현욱 기자] 이 세상 모든 생명은 도전과 응전이 연속되는 자연과 맞서 멸절과 진화를 반복한다. 이 전쟁통에 살아남는 종은 'DNA'라는 전리품을 챙긴다. DNA는 자연과의 전쟁에서 살아남게 하는 좋은 무기가 된다. 수많은 DNA 염기서열은 종자로 구현되며 DNA의 수많은 조합은 종의 다양성을 만들어낸다.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다양한 종이 있어서다. 
  
때론 종자가 한 국가의 '부(富)'를 책임지기도 한다. 네덜란드의 튤립 종자는 수출 역군으로 활약하고 있고 일본의 '사카다'라는 종자기업은 브로콜리로 세계를 석권했다. 때문에 종자는 농업의 반도체로 불린다. 종자 하나가 300배의 부가가치가 있어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산림분야에도 종자가 중요하다. 우리가 무심코 바라보는 산에도 무수히 많은 육종가가 수십 년 피땀 흘려 개발한 종자가 곳곳에 숨어있다. 사람이 유명 브랜드 옷을 입는 것처럼 숲도 좋은 품종의 나무를 입는다. 트렌드에 맞는 나무를 입은 숲은 세련되고, 토종 종자로 뒤덮인 숲은 고풍스럽다. 
  
산도 아무 옷이나 입지 않는다. 산에도 전문 코디네이터가 있다. 종자은행이라 불리는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는 국가가 관리하는 산림에 새로운 옷을 코디한다. 패션이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에 민감하다면 이곳은 30년 후를 바라본다. 미래의 유행과 경제적 가치를 고려해 우량 품종을 선발, 매년 50ha 숲에 '신상' 나무를 심는 식이다.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역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신상도 신상 나름. 전국에 분포된 나무 중 빼어난 형질만을 골라 신품종을 발굴한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나무 집단을 채종원(seed orchard)이라 하는데 채종원을 관리하는 게 센터의 임무다. 채종원은 전국의 우수한 산림 씨앗이나 국내 토종 종자를 육성, 보전하는 곳이라 보면 된다.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에는 관람객들이 보기 편하게 산림 종자를 전시하고 있다.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에는 관람객들이 보기 편하게 산림 종자를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춘천, 강릉, 평창 등 북부지역에 320ha, 수원, 안면, 충주, 청주 등 중부지역에 380ha, 고창, 사천, 제주 등 남부지역에 178ha의 채종원이 조성돼 있다. 채종원산 종자는 일반 임분 종자에 비해 약 30% 품질이 좋고 연간 2만 ha 조림 시 1,700억 원의 경제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배태웅 박사는 “지금까지 센터가 전국 925ha의 산림에 채종원을 조성해오고 있다"면서 "2030년까지 1,500ha의 채종원 조성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잘못된 나무를 심어 경제적 손실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우수한 수종의 나무를 선별해 육성하고 보전하는 게 센터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는 특허청 역할도 도맡는다. 보통 상표와 기술, 디자인에만 특허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살아있는 식물에도 특허가 있다. 특허청이 상표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을 보장해 준다면 이곳에서는 산림식물에 대한 지식재산권인 ‘산림 신품종보호권’을 심판하는 역할도 한다.
  
산림 종자의 중요성은 종자주권 문제로 귀결된다. 종자를 빼앗긴 대표적인 사건은 '미스김라일락' 사례다. 1948년 해방 이후 미 군정청 자문관으로 우리나라에 왔던 엘윈 미더 러커스대 교수가 북한산에서 씨앗을 채취해 미국으로 돌아가 '미스김라일락'을 탄생시켰는데 이 품종은 세계적으로 호평받는 미국의 대표 품종으로 둔갑했다. 손 놓고 종자를 빼앗긴 셈이다.
  
종자주권의 중요성 때문에 1968년 충주지역에 국내 최초로 채종원이 생긴 이래 정부는 채종원의 보안을 철저히 지켜왔다.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알리바바의 보물처럼 꼭꼭 숨겼다. 시대가 변하고 산림 품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무려 52년 동안 숨겨온 자연이 베일을 벗었다. 2015년 정부는 산림의 가치를 알리고자 채종원을 개방하고 그 가치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배태웅 박사는 "이곳을 개방한지 5년이 되었지만 국민들도 이곳에 존재와 쓰임에 대해 잘 모른다"면서 "가치 있는 산림자원 조성에 기여하고 산림종자생명산업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센터는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매년 초대받은 약 6천여 명의 관람객이 전문 숲해설가의 도움을 받아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채종원의 모습.(사진제공=산림청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
채종원의 모습.


[숲을 지키는 사람들] 

숲의 스타트 라인 ‘채종원’  

힐링플레이(주) 소속 미녀 숲해설가 4인방이 숲을 그리는 방법

 

독특한 숲프로그램 개발로 정평이 나 있는 유경수 팀장, 우혜정, 송미옥, 정은숙(오른쪽부터) 숲해설가 4인방은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에서 산림 종자의 가능성, 숲의 신비함을 알려주고 있다.
독특한 숲프로그램 개발로 정평이 나 있는 유경수 팀장, 우혜정, 송미옥, 정은숙(오른쪽부터) 숲해설가 4인방은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에서 산림 종자의 가능성, 숲의 신비함을 알려주고 있다.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의 숲해설가들은 특별하다. 숲의 시작인 '씨앗의 터'에서 배우고 교육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숲의 스타트 라인이다. 그만큼 씨앗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채종원의 가치와 국내 산림을 주무르는 우량 수종 소개도 이들 몫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채종원이 산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숲 교육 프로그램에 녹여 알기 쉽게 설명한다. 아름다운 숲을 직접 찾아가 트래킹 하는 찾아가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독특한 숲 프로그램 개발로 정평이 나 있는 유경수 팀장, 송미옥, 우혜정, 정은숙 숲해설가 4인방의 숲 알리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우주를 품은 씨앗 
아이들 머릿속에 상상을 불어넣다

  
손톱만 한 종자가 아름드리나무가 되기까지 나무는 나이테로 세월의 흔적을 남긴다. 봄 여름 가을 겨울과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면서 차곡차곡 띠를 두르는 셈이다. 나무는 모여 숲을 이루고 숲은 지구의 허파가 된다. 작은 씨앗 하나가 퍼트리는 생명의 신비는 아이들에게도 큰 자극이 된다.
  
"씨앗이 우주를 품고 있다고 하잖아요. 이곳이 그 현장이에요. 다양한 산림 수종이 마치 보물섬처럼 저장돼 있어요. 얼마나 신기해요. 아이들도 이곳에 오면 간접적으로 느끼죠. 마치 노아의 방주 같잖아요."
  
핸드폰 게임처럼 빠른 디지털 세상에서 갓 나온 아이들은 숲이 지루하다. 고요하고 조용한 세상은 자극적인 맛을 쏙 빼놓은 절간 음식처럼 싱겁기 그지없다. 하지만 조금씩 이곳에 적응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머릿속에도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은 상상이 메꾼다. 작은 머릿속에 생태계가 그려지고 자연이 채색된다. 
  
"어떤 아이가 숲 교육이 끝나고 집에 갈 시간이 되니 기분이 나빠 죽겠다는 거예요. 깜짝 놀라 물어보니 다시는 이곳에 못 올 거 같아 서래요. 뿌듯했죠. 아이들에게도 참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됐었구나. 그리고 이곳이 바로 교육의 현장이구나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산림 부산물로 만든 장난감.
산림 부산물로 만든 장난감.


‘노노(No老)케어’ 프로그램 발굴
산림 소외계층 잊지 못할 감동 선사

  
사회에 소외된 이들이 있는 것처럼 산림에도 소외된 계층이 숨어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 보호자 없이 다닐 수 없는 유아들이다. 가족이 산을 좋아하지 않거나 산림 교육 프로그램이 없으면 숲에 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들이 그나마 사회의 레이더망에 잡힌다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부류도 있다. 70세 가까운 노인들이다. 대부분의 일을 혼자 할 수는 있지만 새롭고 좋은 곳은 스스로 찾지 못한다. 초기 베이붐 세대는 지금의 디지털 세상에서 이격 돼 문화적 기아 상태에 빠진 이들이 많다. 주위에서 손잡고 이끌지 않으면 숲이 주는 풍요와 안식은 느낄 수 없을지 모른다.
  
“실제로 주변을 살펴보면 노인들 스스로 숲을 못 가는 분들이 많아요. 이분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돼 문화생활을 잘 누릴 수 있을 것 같지만 디지털 세상에 익숙지 않은 데다 인지능력, 활동 능력이 떨어져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요. 오히려 숲은 산림 소외계층에서 더 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요.”
  
지난해 이곳 숲해설가들은 ‘노노(No老)케어’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노인들 케어(돌봄) 걱정 No!’라는 구호 아래 어르신들의 기억력과 체력을 증진하는 게 목적이다. 산림청 인증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어르신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숲을 걷기 힘든 분들은 노르딕 폴(스키를 탈 때 사용하는 스틱)을 사용했다. 노르딕 폴에 신체 일부를 지탱하기 때문에 관절 질환으로 운동에 부담을 느끼는 노인들도 쉽게 활용 가능하다는 게 유경수 숲해설가의 설명이다.
  
“채종원에서 경험은 어르신들에게도 잊지 못할 감동이었던 것 같아요. 이곳은 특별히 초대받은 사람만 올 수 있잖아요. 차가 있으면 직접 모셔오고 싶어요.”

  
산림 '끝판왕' 
"채종원으로 오세요"

  
물리학에서는 ‘상전이’라는 개념이 있다. 온도에 따라 물이 얼음이 되기도 하고 다시 물이 되기도 한다. 사람도 ‘상전이’를 겪는다. 주위 환경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한다. 숲 환경이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초록 숲과 파란 공기 간혹 빨간 꽃이 시선에 담기면 세상 모든 축복을 받은 듯 착각에 빠진다. 
  
“이 씨앗 과수원만의 스토리가 있잖아요. 이곳에 오면 정말 축복받은 기분이겠죠. 저희 숲해설가들이 산림의 ‘끝판왕’을 보여드릴게요. 앞으로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숲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동남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