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농어촌상생협력기금 현주소(1)]잘못된 시작…그래도 다시 한 번
[심층기획-농어촌상생협력기금 현주소(1)]잘못된 시작…그래도 다시 한 번
  • 이은용 기자
  • 승인 2020.01.03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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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국회 기업에 자발성 부여…기금 조성 한계 부추겨
무역이득공유제 도입 대안 아닌 논란만 더욱 가중 시켜
기금 더욱 활성화 할 수 있는 보완책 마련이 ‘최선책’

[팜인사이트=이은용 기자] 매년 국정감사 때만 되면 농업 분야 단골손님으로 입에 오르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대기업들의 참여 저조로 농어촌상생기금 거출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출범부터 지금까지 계속 받고 있다.

농어촌상생기금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혜를 보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농업계의 피해를 보전한다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다. 특히 2015년 11월 한·중 FTA 비준안 처리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에서 합의사항으로 내놓으면서 2016년 법 개정을 거쳐 2017년 도입됐다.

기금은 FTA 수혜를 입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매년 1000억 원씩 10년간 1조원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출범부터 농어촌상생기금이 기업들을 대상으로 거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왜냐면 그 당시 정부와 국회가 기업에게 자발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농업계 원래 무역이득공유제 요구

농업계에서는 원래부터 무역이득공유제를 요구해왔다. 무역이득공유제는 FTA로 인해 수혜를 받는 기업의 이익 일부를 환수해 농어업 등 피해산업을 지원하자는 제도다.

이 제도는 별도 법률을 만들어 조세 형태로 기업들에게 15년간 3조원의 기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기업들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결국 정부와 국회는 기업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율성을 부과한 농어촌상생기금으로 대체한 것이다.

기업 반발 결국 농어촌상생기금 대체

이렇게 기업들에게 자율성을 부과하게 되자 실질적으로 농어촌상생기금에 거출하는 기업들은 많지가 않았다.

실제로 2017년에는 공기업 306억 2500만 원, 민간기업 3억 90만원, 개인 및 단체 3860만원 총 309억 6450만원이 거출됐으며, 2018년에는 공기업 179억 3030만원, 민간기업 52억 1500만원, 개인 및 단체 1350만원 총 231억 5880만원 거출됐다.

올해(12월 2일 기준)는 지난 두해보다도 적은 총 196억 983만원(공기업 171억 7574만원, 민간기업 24억 3119만원, 개인 및 단체 290만원)이 거출됐고, 3년차 목표액 3000억 원에 미치지 못한 737억 3314만원을 거출하는데 그쳤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 기금 거출 부정↑

이와 함께 2017년 출범 당시 상황도 기업들에게 무시 못 하는 상황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당시 민간기업의 기금 출연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은 2017년 터진 ‘최순실 게이트’ 여파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 최측근인 최순실이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 온갖 형태로 기업들의 돈을 부정적으로 취득하고, 입시비리, 부당한 권력 행사 등으로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국정농단 사건이다.

당시 최순실이 운영했던 미르재단 등에 대기업들이 많은 출연금을 내 법적인 문제(뇌물죄 등)가 발생하자 그 이후 민간 기업들은 기부와 관련한 내부 규정을 강화해 사실상 외부 재단을 통한 기부금 거출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울러 민간 기업들에게 거출이 쉽지 않게 되자 에너지 공기업을 중심으로 무리하게 거출을 시작하게 돼 농어촌상생기금의 90% 가까이가 공기업에서 출연 금액으로 채워져 결국 기금 취지에서 벗어나게 됐다.

재단

정부-국회 농업인 기망 비판 쏟아져

이런 이유에서 농어촌상생기금 도입을 추진한 정부와 정치권이 농업인을 기망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농업계 관계자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 출연액이 매년 줄어들고 있어 기금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이 기금은 2015년 한중 FTA 국회 비준 당시 시장개방으로 위기에 놓인 농어업인과 농어촌을 지원하기 위해 여야정 합의로 조성됐으나, 모금 실적이 목표액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때문에 농촌 현장에서는 정부와 국회, 민간 기업을 신뢰할 수 없으며, 더는 국익이라는 핑계로 농업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면서 “특히 처음부터 제대로 거출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정치적 이유 때문에 국회와 정부가 농업인이 원치 않은 농어촌상생기금을 조성하면서 결국 농업인들이 기업에 구걸하게끔 상황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는 FTA으로 수혜를 보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농업계의 피해를 보전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기금이 반대로 오히려 농업인들이 기업에게 손을 벌리는 모습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역이득공유제 도입 다시 논의하자

이런 상황에서 일부 농업계에서는 처음부터 잘못 설정된 농어촌상생기금을 포기하고 법으로 보장된 무역이득공유제 도입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농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3년 동안 농어촌상생기금이 거출되는 모습을 지켜봤지만 많은 기업들의 행태나 정부와 국회의 모습 속에서 더 이상 여기에 기대하는 것은 한계에 이르렀다”면서 “제도 도입 당시 정부와 국회가 농업인을 속였던 만큼 책임을 지고 보다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는 무역이득공유제 도입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에 일부 정치권에서도 무역이득공유제 도입을 주장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농어촌상생기금이 매년 1000억 원씩 10년간 1조원을 조성한다는 목표를 삼았지만 지금까지의 모금실적은 600억 원 정도로 미진하다”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구속력을 지닌 무역이득공유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홍 의원은 지난 2012년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현실상 불가능…최우선 과제는 ‘보완책’

하지만 무역이득공유제 도입은 헌법상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커 논의하는 과정이 길어져 농업인들의 피해만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대안으로 마련한 농어촌상생기금이 더 활성화 되도록 정부와 국회, 기업, 농업인이 함께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게 현장의 중론이다.

농업계 전문가는 “자발적 참여에 따른 기금 조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농업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지만 기금 이외에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논란만 가중 시킬 무역이득공유제 도입을 다시 논의하기에는 제약이 많기 때문에 기금을 더욱 활성화 할 수 있는 보완책 마련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