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금을 만든 사람들] 홍형선 전 국회사무처 차장
[자조금을 만든 사람들] 홍형선 전 국회사무처 차장
  • 옥미영 기자
  • 승인 2024.01.11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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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자조금 입법, 제 인생의 빛나는 선물입니다”
김건태 회장 자조금 법제화 열정에 큰 감명 받아

[본 기사는 한돈자조금 20년사에 먼저 수록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축산자조금 입법화의 순간은 수많은 법을 다뤄온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힘들게 만들어진 법이 지금은 국내 축산업을 유지하고 이끌어가는 큰 동력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개무량합니다.”

홍형선 전 국회사무처 차장은 20년 전 축산자조금법 제정 당시를 생생히 기억했다.

입법고시로 1995년 행정사무관에 임용돼 5~6년 차에 접어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새내기 입법조사관이었던 그에게 어느 날 원철희 의원이 찾아와 ‘축산자조금 입법’을 간곡히 당부한 것이 축산자조금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그때부터 축산자조금법에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기 시작했지만, 법리 구성 초기 단계부터 좀처럼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고 홍 전 차장은 회고했다.

축산물 시장 개방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 국내 축산업이 처한 위기를 직시하고 있었던 그는 자조금 법이 국내 축산물을 홍보하는 최소한의 수단으로 도입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깊이 공감했지만, 무임승차자가 발생하는 구조로는 자조금 거출의 영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데 주목했다.

 

준조세 성격이 가진 법안이 아니고서는 성공확률이 낮다고 판단했고, 어떤 식으로 입안해 법사위를 통과시킬 수 있을까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굉장히 어려운 법안이었어요. 국회 농해수위 입법조사관으로 일한 5~6년간 다양한 법률을 다뤄왔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축산자조금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추진될 수 있었던 데는 축산업계 지도자들의 절박함에 있었다고 홍 전 차장은 말했다.

특히 한돈협회 지도자들의 활동은 눈에 띌 정도로 활발했는데, 김건태 회장의 열정과 진정성에 큰 감명을 받아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다고 홍 전 차장은 말했다.

이때부터 그는 축산자조금법안 마련을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농해수위 내에서 축산자조금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형성은 충분했지만, 법리적 수용 가능성에 대해선 의구심을 갖고 있던 터라 법안 제정을 위한 ‘방법론’에 몰두했다.

결국, 홍 전 차장은 헌법에 명시된 ‘보충성의 원칙’으로 절차 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집중했다. ‘보충성의 원칙’이란 법리를 목적론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특정 산업이나 분야의 공익적 목적 달성을 위한 최후의 수단을 말한다.

“국내 축산업계를 살리기 위한 유일한 수단임을 인정해달라는 것이었죠. 비록 축산자조금법에 약간의 위헌적 요소가 있더라도 ‘공익적 목적’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최후의 수단’, ‘보충성의 원칙’으로 반대 논리를 불식시켜나갔습니다.”

‘자조금 거출을 위한 경로 설정’ 또한 홍 전 차장이 축산자조금법의 법리적 명분으로 활용한 중요한 원칙이었다.

법은 경로가 한번 잡히면 되면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는 길이 바뀌지 않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의 속성을 갖고 있어 제도만 완비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관례처럼 흘러가게 된다는 원리다.

자조금 법이 통과되어 가축을 출하할 때마다 자조금을 갹출하게 될 경우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지고 경로에 의존하게 되면서 시간이 지나 그 방식이 설사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흐르더라도 좀처럼 이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자조금 거출 경로가 한번 구축되면 구성원과 관련업계 모두가 윈윈하는 모델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입법만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서든 지속될 수 있다는 믿음이 컸다고 홍 전 차장은 회고했다.

그는 1년 넘게 국회와 축산회관을 오가며 축산단체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가면서 직접 법안의 초안을 만들고 가다듬어 나갔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축산자조금법 제정의 희망을 본 건 법 제정 1년 앞두고 열린 ‘축산자조금법 공청회’에서였다.

공청회에선 법안 추진의 배경에 대한 공감 여론은 물론 농가들로부터 자조금을 강제로 징수하는 일종의 세금 성격인 자조금의 위헌성이 논란의 대상이었다.

“축산자조금 입법에 대한 찬반 이론이 공청회장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자조금법이 내재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쏟아지면서 ‘그다음은 자조금법이 안 된다면 축산업을 위한 대안이 있는가’에 의견이 모아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최적의 대안으로 ‘축산자조금’ 조성을 통한 국내산 축산물 홍보로 귀결됐다.

홍 전 차장은 “축산자조금 입법 당시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면서 “한돈업계 리더들의 열정과 헌신이 없었다면 법안 마련과 통과는 없었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대학에서 농경제를 전공하면서 농업과 농촌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으로 축산업을 지켜보았던 한 사람으로서 축산업계 리더들의 순수한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아 저도 한마음이 되어 힘을 보탠 것 같습니다. 축산자조금이 산업을 유지하는 종잣돈으로서 기능을 다 하며 자부심을 갖게 해주신 축산농가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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