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금을 만든 사람들] 박종수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자조금을 만든 사람들] 박종수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 김재민 기자
  • 승인 2024.01.17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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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조금연구회 통해 의무자조금 입법 기여
농가 대상 자조금 교육...갈등 조정 등 역할

[본 기사는 한돈자조금 20년사에 먼저 수록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박종수 명예교수(충남대)는 자조금 프로그램이 제도화 되고, 양돈자조금이 실행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던 핵심 인물 중 한명이다.

미국사료곡물협회 박영인 박사가 미국의 사례를 정리해 자조금도입 필요성을 알리는데 공헌을 했다면, 박종수 교수는 학계를 대표해 이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축산업계와 정부, 정치권에 제공했고, 축산단체와 수시로 접촉하며 자조금이 도입되기까지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박종수 교수가 자조금 프로그램 제도화와 자조금 도입을 위해 헌신하게 된 계기는 박영인 박사와 건국대학에서 함께 수학하면서 맺은 인연 때문이다. 지금은 고인이된 박영인 박사는 박종수 교수보다 연배는 10년쯤 앞서지만 함께 대학원에서 자조금과 관련해 이러저러한 토론을 하게 되었고 자조금 제도 도입을 위해 의기투합하게 됐다. 농협대학에서 교수로 재작했던 박종수 교수는 1986년 충남대학교 축산학과에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조금 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당시 박영인 박사는 미국사료곡물협회 소속이었기 때문에 자조금프로그램 도입으로 국내 축산업이 활성화 되면 자연히 미국산 곡물의 한국 수출은 늘어나게 되니 그의 활동에 대한 진정성을 담보 받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 박종수 교수가 학계를 대표해 이 운동에 참여하면서 좀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90년 1차 제도화에 성공하고 1992년 돼지와 양계에서 자조금사업이 시작됐지만 시작부터 낮은 거출율로 인해 자조금프로그램은 양돈업계에 유의미한 기여를 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박종수 교수와 박영인 박사는 1992년 자조금연구회를 발족시키고 본격적으로 자조금 프로그램이 축산업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기 시작했다.

 

초대 연구회장은 박영인 박사가 맡았고, 2대 연구회장은 박종수 교수가 맡았다.

그렇게 두 연구자는 자조금의 이론적 배경을 확립하고 자조금프로그램이 어떻게 해야 정착할 수 있을지를 연구한 끝에 해당 품목의 모든 농가에게 강제적으로 자조금을 납부하도록 해야 무임승차에 따른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 봤다.

강제로 자조금을 내게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멋진 작명이 필요로 했는데 박종수 교수는 지금까지 자조금을 임의자조금으로 그리고 모든 농가가 납부에 동참하는 자조금을 의무자조금으로 하자고 제안했고, 1998년 이후 의무자조금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박종수 교수는 의무자조금제도 도입 과정에서도 맹활약했다.

시장개방과 외환위기, 대일돼지고기 수출 중단 등으로 고사직전에 있던 축산업계가 의무자조금제도 도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보겠다고 나섰을 때 국회 원철희 의원을 비롯한 몇몇 국회의원들이 돕겠다고 나섰지만 해당 법률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장개방으로 축산농가가 어려운데 정부가 나서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농가로부터 준조세 성격의 자조금을 강제로 걷겠다는 발상 자체를 동의하지 못하겠다 하는 사람부터, 축산단체들이 회비를 조성하는데 국회가 법까지 만들어줄 필요가 있냐는 사람까지 의무자조금법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

박종수 교수는 2001년 11월 16일에 개최된 입법을 위한 공청회에서 학계 대표로 나서 의원들의 다양한 질의에 진술자로 나서서 답변했다.

당시 진술자로 축산단체 대표들도 나섰지만, 자조금법이 필요하다는 호소 정도에 그쳤다면, 박종수 교수는 해외의 자조금 사례와 도입 시 국내 축산업의 발전 가능성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자조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의원들의 마음을 돌려 놓을 수 있었다.

공청회 이후 축산자조금 제정법안은 농해수위와 법사위 그리고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통과하며 2002년 5월 13일 자조금법이 공포된다.

이후 양돈협회는 축산단체 중 가장 빨리 의무자조금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대의원 선출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하지만 양돈협회의 구상과 달리 추진위원회 운영과 관련해 농협과 갈등을 빚게 되었고 추진위원장 인선 작업에서부터 틀어져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돈협회는 자조금 제도화에 협회가 앞장선 만큼 준비위원회를 양돈협회장 중심으로 신속히 마무리를 지을 생각이었지만 농협은 양돈농가들의 총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공동위원장 체제로 갈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농협과 양돈협회 간의 힘겨루기는 양단체의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번지면서 추진위원회는 이후 개최되지 못하였는데 이때 박종수 교수가 중재자로 나서게 된다.

박 교수는 박사 학위 취득 후 농협에서 일했던 겸험을 살려 농협 인사들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하였고, 공동준비위원회에 농협중앙회 임원이 아닌 양돈농협 조합장들이 참여하도록 조율을 거쳤다.

다시 양돈협회에는 양돈농가 중 절반도 안되는 농가만히 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어 대의원 선거 등이 원활히 치러지기 위해서는 농협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농협이 요구하는 공동위원장 체제로 준비위를 꾸려갈 것을 설득했다.

양단체는 팔레스호텔에서 박종수 교수 중재로 만나 농협측 준비위원을 양돈조합장으로 전원 교체하고, 양돈협회장과 대전충남양돈축협 조합장이 공동위원장으로 준비위를 꾸려나가기로 합의하게 된다.

이렇게 박종수 교수는 자조금프로그램이 정착될 수 있도록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는 일뿐만 아니라 실제 자조금사업이 실행될 수 있도록 농가들을 설득하고, 단체간 갈등을 조정하는 등 여러 역할을 감당했다.

박종수 교수는 박영인 박사와 함께 2003년 자조금연구원을 발족시킨다.

이사장에는 박영인 박사, 원장에는 박종수 교수가 맡아 의무자조금 운동을 측면 지원하기에 이른다.

박종수 교수는 자조금 프로그램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어야 한다며 자신과 박영인 박사가 1세대 연구자였다면, 2세대 연구자들이 등장해 자조금사업이 든든히 서가도록 연구와 조언을 감당해야 한다며, 후학이 나타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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