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년 전 오늘 - 축산 소식45] 임금이 탔던 말은 요리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566년 전 오늘 - 축산 소식45] 임금이 탔던 말은 요리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9.1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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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61호, 양력 : 9월10일, 음력 : 8월 1일

[팜인사이트= 남인식 편집위원] 조선시대 궁중잔치인 연향(宴享)은 정초, 단오, 동지 등 절기와 국왕의 즉위 기념일, 국왕과 대비의 생신, 왕세자 책봉 등 국가적인 경사에 거행된 잔치로, 왕실 안정과 군신화합, 노인공경,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여 거행된 국가의례의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연향에서는 주로 악기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공연인 정재(呈才)를 연행하였고, 반주음악에는 보허자(步虛子), 여민락(與民樂), 영산회상(靈山會相)등의 당악(唐樂)과 향악(鄕樂)을 사용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연향 관련 의궤(儀軌)의 표제에는 대개 진풍정(進豐呈)·진연(進宴)·진찬(進饌)·진작(進爵)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 용어들은 같은 시기에 공존한 것이 아니었으며 개념 또한 항상 일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선 건국 초에는 잔칫상을 올리다라는 뜻으로 진풍정을 많이 사용하였고, 그 이후에 진연은 진풍정보다는 초대 손님 규모가 작을 때, 진찬은 진연보다는 규모가 작을 때, 진작은 진연이나 진찬보다 규모가 작고 의식 절차가 간소한 연향 때 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실록에서 말고기에 대한 기록은 주로 제주에서 말린 말고기(乾馬肉) 공물에 대한 내용이 많으나, 세종대에는 마육(馬肉)의 매매를 우육(牛肉) 매매의 예에 의하여 관청의 명문(明文)을 받아야만 비로소 매매를 허용하도록 한 것으로 보아 식용으로 널리 활용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566년전 오늘의 기사에는 왕실에서 임금이 타던 내구마(內廐馬)를 연향에 쓰지 못하도록 하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단종실록 2권, 단종 즉위년 8월 1일 신유 기사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연향에는 내구마 대신 사람들이 바치는 말들을 모집하여 사용하게 하다

의정부에서 병조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예전에 헌 장막을 버리지 아니하는 것은 말을 묻기 위한 것이다.’ 하였고, 전국(戰國) 시대에 전자방(田子方)이 말을 파는 자를 보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공가(公家)의 가축이다.’ 하니, 전자방이 말하기를,‘말이 젊어서는 그 힘을 다하고 늙어서는 그 몸을 버리니, 어진 자는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하고 속백(束帛)으로 이를 속(贖)하였습니다.

또 본조에서도 타던 말이 죽으면 이를 묻어 주었습니다. 무릇 죽은 말도 오히려 묻어 주고, 파는 말도 오히려 속(贖)해 주어서 차마 하지 못하는 어짐(不忍之仁)을 다하였는데, 이제 내구마(內廐馬)를 골라서 연향에 쓰는 것은 참으로 미편합니다. 청컨대 이제부터 연향에 공용(供用)하는 말은 사련소(司臠所) 제조와 분예빈시(分禮賓寺)로 하여금 같이 의논하게 하여, 사람들이 바치는 말들을 모집하되, 종자마(種子馬)를 진헌하는 예에 의하여 1필마다 목장(牧場) 아마(兒馬) 3필씩을 주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12장

【주】속백(束帛) : 묶은 비단.

     내구마(內廐馬) : 임금의 거둥에 사용하기 위하여 내사복시(內司僕寺)에서 기르던 말.

     사련소(司臠所) : 제사에 쓰는 희생(犧牲)이나 궁중에서 사용하는 육류를 장만하는 일을 맡아 보던 관아.

     아마(兒馬) : 길들지 않은 작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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