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29호, 양력 : 7월 4일, 음력 : 5월21일
밤 사이에 우리나라에 태풍이 지나가면서 영남지역과 동해안에 많은 비가 왔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자연 재해는 끊이지 않아 태풍(颶風)이나 대풍(大風)에 대한 기록은 190여 차례나 언급되어 있으며, 대수(大水) 또는 대우(大雨) 등으로 표시된 홍수(洪水)도 서울과 인근에만 공식적으로 170여 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강우량 측정은 잘 알려진 대로 세종 대에 발명된 측우기(測雨器)가 사용되었는데, 표준으로 제작된 측우기를 천문관서인 서운관(書雲觀)과 팔도의 감영에 나누어 주고, 비가 오면 비 오고 갠 시간과 강우량을 기록하여 조정에 보고하고 그 기록을 남겨두도록 하였습니다. 493년 전 오늘의 기록에는 전라, 충청, 강원도에 우박이 내리고, 함경도에는 큰 비가 내려 인가가 떠내려가고 사람과 가축이 죽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종실록 54권, 중종 20년 5월 21일 기묘기사 1525년 명 가정(嘉靖) 4년
전라·충청도 일부에 우박, 함경도 단천에 홍수가 나다
"전라도 옥과(玉果), 충청도 회덕(懷德), 청주(淸州), 청안(淸安), 목천(木川), 강원도 홍천(洪川)에 우박이 내리고, 함경도 단천(端川)에 큰 비가 내려 나무와 바위가 모두 뽑히고 인가가 떠내려갔으며 사람과 가축이 깔려 죽었다.
【태백산사고본】 27책 54권 3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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