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1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4] 왕실에 전담으로 우유를 공급하는 관청이 있었다.
[591년 전 오늘 - 축산 소식24] 왕실에 전담으로 우유를 공급하는 관청이 있었다.
  • 남인식 편집위원
  • 승인 2018.08.0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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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40호, 양력 : 8월 2일, 음력 : 6월21일

조선시대 우유(牛乳)는 임금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으로 지금처럼 음용우유로 활용하기 보다는 찹쌀이나 쌀을 끓인 타락죽(駝酪粥) 형태로 이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유를 왕실에 공급하기 위해 조선 초기에 설치한 관아(官衙)가 유우소(乳牛所)로 종사 인원이 많을 때는 200여명에 이르렀으며, 세종때에는 이름을 타락색(酡酪色)으로 바꾸고 소 기르는 목장을 지금의 서울 동대문에서 동소문에 걸치는 동산 일대로 옮겨 이곳이 타락산(駝酪山) 또는 낙산(酪山)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왕실 목장에서 기르던 소들은 지금의 젖소와는 다른 분만한 농우(農牛)를 경기(京畿)의 민호(民戶)에서 색출(索出)하여 사용한 경우가 많아 암소와 송아지가 함께 상해 원성이 많았으며, 영조(英祖)실록에는 다섯 주발의 타락죽을 위하여 열여덟 마리의 송아지가 젖을 굶게 하는 것은 인정(仁政)이 아니다라는 임금의 지적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소 두수를 줄이거나 우유의 진상을 중지하라는 하교(下敎)가 종종 있었는데, 591년전 오늘의 기사에는 우유 짜는 젖소 두수를 줄이라는 하명(嘏命)이 있었습니다.

 

■ 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 6월 21일 무인 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 비가 왔다.

젖소를 줄이도록 명하다

우유 짜는 젖소를 줄이도록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2책 36권 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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